사설·칼럼

[기업과 옛 신문광고] 아모레와 코티분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10 17:42

수정 2023.08.10 17:42

[기업과 옛 신문광고] 아모레와 코티분
1904년 프랑스에서 시판된 '코티분(粉)'은 일제강점기에 국내에 처음 들어왔다. 국산 '박가분'이 팔릴 때인데 코티분을 쓰면 왠지 우월감을 느꼈다고 한다. 1937년 박태원이 쓴 소설 '여인성장(女人盛裝)'에 나오는 내용이다.

6·25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 가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욕구는 커졌지만 쓸만한 분 하나 없었다. 코티분은 부르는 게 값이어서 밀수품이나 가짜 분이 설쳐댔다. 정품 코티분 빈 갑이 비싼 값에 매매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가짜가 많았는지 알 수 있다. 태평양화학 창업주 서성환은 1959년 프랑스 '코티'와 기술제휴를 맺어 코티분을 똑같이 만들어 광고를 내고 판매했다(사진·조선일보 1966년 3월 15일자). 프랑스제와 원료나 제조 과정이 같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오리지널 프랑스제를 선호했다. 국내산을 믿지 않고 모조품이 나돌자 태평양화학은 진품 감별법을 설명한 광고를 내기도 했다.
코티분은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이 국내 대표 화장품으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서성환의 화장품 사업은 1932년 '창성상점'을 열어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던 개성상인 어머니 윤독정의 뒤를 이은 것이다. 서성환은 평소 우리 회사의 모태는 어머니라고 말했다. 개성 중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업을 돕다 중국으로 징용을 갔던 서성환은 광복 직후 귀국, 서울 회현동에 공장을 지어 최초의 국산 화장품 '메로디크림' 등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전쟁이 터진 뒤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도 'ABC포마드'를 생산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962년에 영등포공장을 준공하고 1964년엔 최초로 화장품을 수출하는 등 태평양화학은 도약을 거듭했다. 그해 소비자들의 의견을 모아 브랜드를 '아모레'라고 지었다. 서성환은 회장실 비품을 25년간 사용할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생전에 직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구내식당에서 식사도 자주 했다. 1979년부터 차(茶) 문화를 살리고자 제주도에서 차 재배를 시작, '오설록' 차를 만들어 냈다.
외국 기술로 복제품을 만들어 팔던 국산 화장품은 이제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럭셔리와 프리미엄 화장품을 주력으로 하는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한국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100대 명품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밀수품을 선호하던 나라에서 'K뷰티'로 불리는 화장품 산업의 강국이 된 한국은 스킨케어 부문에서 미국과 프랑스를 이어 세계 3위 화장품 수출국 자리에 올랐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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