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에도 메자닌 담는 투자자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에스티팜은 시설 및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7일 1000억원 규모의 CB 발행을 결정했다.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은 모두 0% 수준이다.
즉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시세차익은커녕 이자수익률도 못 건지는 셈이다. 그럼에도 해당 사채는 중국계 투자회사인 라이프 캐피탈(LYFE CAPITAL FUND IV (DRAGON), L.P.)를 비롯해 국내 증권사, 운용 펀드에서 경쟁적으로 나눠 담았다.
시장에선 '제로금리'임에도 여러 투자자의 자금이 들어간 것을 두고 주가 상승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방증한다고 해석했다.
최근 메자닌 채권으로는 에코프로비엠의 CB가 발행 규모가 가장 컸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7월 24일 총 5000억원 규모 CB를 발행했는데 표면이자율은 0%, 만기이자율은 2.0% 수준이다.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만기인 2028년 7월 24일까지 보유하면 투자자들은 2.0% 수익을 거두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해당 CB에 베팅했다. 스카이에코 유한회사, IMMESG4호 유한회사를 비롯해 증권사, 펀드 자금이 몰렸다.
만기가 오기 전에 주식으로 전환해서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다는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주가 상승 믿음, '대박' 혹은 '독으로'
메자닌 투자는 종종 '대박' 수익률을 안겨다 준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에코프로그룹 오너 일가가 소유한 이룸티엔씨 교환사채(EB) 투자가 있다.
이룸티엔씨는 지난해 12월 EB 1000억원어치를 발행했는데 해당 EB에 투자한 투자자들 일부는 지난 7월 300억원어치에 대한 교환권을 대거 행사했다. 채권 투자 7개월 만에 400%가 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룸티엔씨가 발행한 EB의 교환대상은 계열사 에코프로비엠의 기명식 보통주였기에 가능했다. 이룸티엔씨가 EB를 발행할 당시 에코프로비엠의 주가는 교환가격에 못 미치는 11만원대였으나 올해 들어 급등하면서 지난달 25일 46만2000원(종가 기준)까지 치솟았다. 장중에는 50만원을 넘기도 했다.
교환가격은 1주당 12만5000원이으로, 교환청구권 행사는 올해 1월 1일부터 가능했다. 행사비율은 100% 수준이다. 표면이율은 0%, 만기보장수익률은 연단위 복리 3% 수준이다. 사실상 제로금리였음에도 투자자들은 주가 상승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가졌고 투자 7개월 만에 원금손실 리스크 없이 수익 대박을 거머쥐게 됐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 확고한 믿음은 독이 되기도 한다. 카카오게임즈가 지난 2021년 3월 31일 사모방식으로 발행한 CB 5000억원어치는 이자율 '제로'라는 악조건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표면이율이 0%, 만기보장수익률 0%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주가 상승'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인 기관 투자자들은 경쟁적으로 투자했다.
해당 CB의 주식전환가격은 5만2100원이다. 그러나 현재 카카오게임즈의 주가는 11일 종가 기준 3만50원을 가리키고 있다. 투자자들로선 주식으로 전환받지도 못하고, 채권 수익률도 못챙기는 상태가 된 셈이다.
카카오게임즈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지지부진할 경우 투자자들은 '풋옵션'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 카카오게임즈 CB투자자들은 내년 3월 31일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해당 풋옵션 비율이 올라갈수록 카카오게임즈는 유동성 부담이 커진다.
또 CB 물량이 상당한 만큼 오버행 이슈 역시 주가 상승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한편 전문가들은 밸류에이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카카오게임즈의 CB가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렸을 당시 애널리스트들은 카카오게임즈의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이유로 목표주가를 하향하기도 했다. 실적 대비 고평가됐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보고서에서 김창권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카카오게임즈는 상장 직후 IPO 효과로 주가가 급등해 5만원 전후에서 횡보하고 있다"면서 "엘리온 흥행 성적이 예상보다 부진하면서 주가 상승 동력이 약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카카오게임즈의 주가는) 2021년 기준 40배에 육박하는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 바 있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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