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서 시대의 변천에 따른 역사·현실 인식을 토대로 개인과 집단이 만들어낸 사회와 정치, 문화의 정황을 회화로 풀어낸 노원희 작가(75)의 개인전 '거기 계셨군요'가 오는 11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다.
14일 아르코미술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에는 노 작가가 1980년대부터 작업한 회화와 신작, 대형 천 그림, 참여형 공동작업, 신문 연재소설 삽화 등 작품 95점과 아카이브 자료 39점이 선보인다.
1948년 경북 대구 출생인 작가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1977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80년 소그룹 미술운동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 동의대 교수로 재직했다.
노 작가는 제1전시실에서 한국사회의 변화의 모습을 감지하고 그려낸 심리적 풍경으로 전시의 문을 연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거리에서'(1980), '한길'(1980), '나무'(1982)는 당대의 현실 이면을 몽상적이고 무의식의 표현으로 그려낸 작품들이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서는 산업재해를 다룬 신작을 공개한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그림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발언해왔으며, 이번 신작은 그 연장선상에서 산업재해와 피해자 개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작품 '탑'은 국가의 개입으로 자본을 성장시키려는 욕망이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 속 인물들은 의수와 의족을 끼고 아슬아슬한 포즈로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몸의 탑을 만드는데, 이는 한국 산업 노동의 모순을 재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복으로 갈아 입히고'는 당사자들의 말을 쓴 천을 캔버스에 부착해 콜라주 형식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산재 은폐 고발을 하다 보니 회사가 작업복을 갈아입혀 병원에 보낸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산업재해와 관련된 신작들로, 모두 아르코 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제2전시실에서는 작가의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과 일상, 사적 공간에 침투하는 폭력과 억압, 나아가 인류 보편 서사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회화와 대형 천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대형 천 그림인 '몸 53'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몸짓, 감정을 통해 인간사를 아우르는 파노라마를 제시한다. 이는 작가가 그간 추적해온 인간의 보편적 서사를 망라한다.
임근혜 아르코 미술관장은 "1980년 현실과발언 창립전이 검열로 인해 무산됐던 바로 그 장소에서 열리는 노 작가의 개인전은 미술관 개관 5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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