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조선시대.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 경상도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의 이진동(李鎭東)은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녘까지 툇마루에 앉아있었다. 동쪽 하늘에는 그믐달이 떠 있었다. ‘여명(黎明) 직전의 그믐달이 처량하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밝은 별똥별이 그믐달 앞을 가로질러 떨어졌다. 이진동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진동은 날이 밝자마자 손가락을 이리저리 짚어 일진(日辰)을 점쳐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규괘(睽卦)가 나왔다. 규괘는 위는 리화(離火, 불)괘이고 아래는 태택(兌澤, 연못)괘로 서로 부딪히는 성향을 나타낸다. 이것은 마치 중녀(中女, 離卦)와 소녀(少女, 兌卦)가 한 집에 살면서 뜻이 달라 서로 질시하는 모순에 휩싸인 상황이다. 어디선가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당시 조정은 정조의 정책에 반대하는 노론 벽파(僻派)와 사도세자를 기리는 데 찬성하면서 정조의 정책에 우호적인 소론과 남인으로 주로 구성된 시파(時派)와의 파벌싸움이 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조는 종기로 인한 병환(病患) 중이었고 점차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진동은 노론 벽파에 의한 종기 치료를 가장한 시해(弑害)를 우려했다.
이진동은 조정에 큰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무슨 큰 변고가 생길 징조구나.’ 어서 한양에 가봐야겠다고 작정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아버님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시려는 겁니까?”하고 아들이 물었지만 대꾸할 시간도 없었다.
안동에서 한양까지의 거리는 630여리(里)나 된다. 1시간에 10리(4km)를 간다치면, 젊은이라도 한시도 쉬지 않고 자지 않고 걸어도 이틀하고 반나절 동안 걸어야 한다. 이진동은 젊어서는 축지법을 쓴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걸음이 빨랐지만 지금은 나이가 벌써 고희에 가까웠다. 일흔 나이에 쉬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고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이진동은 벌써 반나절 동안 쉼 없이 걸어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에 도착했다.
그때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형님~”하고 불렀다. 김한동(金翰東)이었다. 김한동 또한 어찌 알고서는 아침 일찍 경북 봉화에서부터 길을 나선 것이다.
“자네도 같은 생각인가?”라고 이진동이 묻자, 김한동은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이진동은 김한동보다 7세 형이다. 그리고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젊었을 때 과거를 함께 본 인연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첫해 낙방을 했다. 이후 김한동은 다음 해에 재차 시험을 치러 합격해서 전라도 관찰사를 거쳐 승정원 승지까지 지냈다. 그러나 이진동은 다시 시험을 보지 않고서 안동의 도산서원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면 학문을 닦고 있었을 뿐이다. 이 둘은 교류를 통해서 수시로 나랏일을 걱정하면서 서로 간의 신뢰와 의지함이 있었다. 따라서 지방에서조차 정조의 안위(安危)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저녁 무렵까지 쉬지 않고 내달린 통에 벌써 소백산 자락의 죽령(竹嶺)까지 왔다. 젊은이라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속도다. 깊은 산속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저녁이 되었지만 쉴 곳이 마땅치 않아 고갯마루에 앉아있는데, 멀리서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 순간, 1800년 음력 6월 28일 저녁 유시(酉時, 17~19시). 정조는 종기를 앓은 지 18일 만에 승하했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더욱 처량하고 크게 들렸다. 불여귀(不如歸)라는 이름이 있는 소쩍새. 마치 ‘이미 늦었으니 돌아가니만 못하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정조의 승하 사실을 모른 채 계속해서 길을 서둘렀다. 그날 늦은 밤, 이들은 죽령 봉오리를 넘어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시 길을 나셨다. 벌써 단양까지 왔다. 주먹밥도 걸으면서 먹었고 멋진 경치에 넋을 잃을까 봐 단양팔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땅만 보고 걸었다.
길을 묻는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으니 사람들은 ‘이들이 혹시 미친겐가?’라면서 의아해했다. 단숨에 단양을 지나 금수산과 제천을 거쳐 힘겹게 천둥산 박달재까지 올랐다.
집을 나선 지 나흘째가 되었다. 이들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 차 있었고 거의 말이 없었다. 이진동의 입술은 바짝 말랐고 입안은 소태처럼 꺼끌거렸다. 근심과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고 간혹 건망증처럼 깜빡거리면서 과거 일들이 잘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다. 심장은 벌렁거리고 식은땀을 흘렸다. 심지어 코피까지 났다. 바로 전형적인 사려상비(思慮傷脾)로 인해 근심, 걱정이 너무 심해서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코피까지 보였다는 것은 혈열망행(血熱妄行)이었다.
김한동은 마치 누가 잡으러 오는 듯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며칠 밤을 지나면서 눕거나 일어나도 오매불망 편치 않았다. 이것은 허번증(虛煩症)이다. 뭔가에 접촉이 되거나 마른 나뭇가지를 밟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깜짝 놀랐다. 이것은 심담허겁증(心膽虛怯症)으로 근심과 걱정이 많아지고 잘 놀라면서 불안과 공포감이 나타나는 것이다. 심담허겁이 심해지면 불안신경증과 강박, 공황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경기도에 도착했다. 여주와 이천을 지났고 장호원에 이르러서는 발바닥이 부르트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걸음걸이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드디어 한양에 다다랐다. 안동에서 출발한 지 단지 이레밖에 지나지 않았다. 젊은이라도 보름이상 걸릴 거리를 7일 만에 온 것이니 얼마나 조급했던 것일까. 그러나 ‘아뿔싸~!!!’ 한양에 들어서면서 정조가 이미 승하했다는 소식을 들게 되었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삼각산을 향해 큰 절을 두 번 하더니 목 놓아 곡을 했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궁궐까지 다 와서는 궁궐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진동의 당시 나이는 68세였고, 김한동은 61세로 환갑의 나이였다.
때마침 정조의 상례(喪禮) 절차를 논하기 위해 궁을 오가는 정약용과 박지원이 이진동과 김한동을 발견했다. 정약용과 박지원은 이들이 이미 7일 전 아침에 출발하여 한양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깜짝 놀랐다. ‘어찌 알고서 승하하시기도 전에 집을 나섰단 말인가?’
박지원은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의원의 진찰을 받도록 했다. 의원은 “이 어르신들은 노심초사로 인해 매사에 조급함이 심해서 나타나는 병증을 보이고 계십니다. 근심과 걱정, 울분과 속상함은 떨어 버리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서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귀비탕(歸脾湯)이나 온담탕(溫膽湯)을 복용하면 차도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이진동에게 귀비탕을 처방했다. 귀비탕은 과도한 고민으로 인한 불안초조, 건망, 심장 두근거림, 식욕부진과 함께 과로 시에 보이는 코피에도 좋은 처방이다. 김한동에게는 화들짝 잘 놀라면서 노심초사하고 불면증에 좋은 온담탕을 처방했다. 이들은 다행스럽게 의원의 처방을 복용하면서 점차 건강을 회복했다. 이진동과 김한동은 건강을 회복한 후 잠시 한양에 머물며 한양의 유생들과 학문교류도 하고 마지막 정조의 장례까지 잘 마무리했다.
이진동과 김한동. 경상도 지역의 옛말에 바쁘거나 몹시 서두르는 모양을 ‘진동한동한다’라고 하는데, 바로 이진동과 김한동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진동한동하면 조급병(躁急病)이 생긴다.
걱정한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 아니며, 서두른다고 해서 넘어질 것을 매번 바로 잡을 수도 없다. 그래도 세상일은 그렇게 흘러간다. 모든 일은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다.
* 제목의 〇〇은 조급(躁急)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목민심서> 案, 今唯安東府土大夫, 猶爲鄕所. 先朝末年, 院長李某, 擬座首首望, 金承旨翰東, 旣經全羅監司, 而擬於副望, 蓋古法也. 古者, 八路皆然, 而後漸陵夷, 唯安東尙守古法. (살피건대, 지금에는 오직 안동부 만이 사대부가 아직도 향소가 되고 있다. 정조 말년에 도산서원의 원장인 이진동이 안동좌수의 수망에 오르고 승지 김한동은 이미 전라 감사를 지냈는데도 부망에 올랐으니, 이것이 옛 법인 것이다. 옛날에는 팔도가 모두 그러했는데, 후에 점차로 무너지고 오직 안동만이 아직도 옛 법을 지키고 있다.)
<광제비급> 健忘者, 徒能而忘其事也, 用歸脾湯, 治脾經, 失血, 小寐, 發熱, 盜汗, 或思慮傷脾, 不能攝血, 以致妄行, 或健忘, 怔忡, 驚悸等症. (건망증은 모든 일을 해 놓고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귀비탕을 처방한다. 비경이 혈이 부족해서 잠을 잘 못자고 열이 나며 도한이 나거나 혹은 생각을 많이 하여 비를 상해 피를 통섭하지 못하여 망행하여 출혈이 되거나 혹은 건망, 정충, 경계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
<의학강목> 驚悸怔忡. 時作時止者痰因火動. 溫膽湯. 治心膽虛怯, 觸事易驚, 或夢寐不祥, 遂致心驚膽懾, 氣鬱生涎, 涎與氣搏, 變生諸症. 或短氣悸乏, 或復自汗. (깜짝 놀라면서 심장이 두근거림, 때로 발작하고 때로 그치는 자는 담으로 인해 화가 동한 것은 온담탕으로 치료한다. 심담이 허겁하여 누가 건드리기만 하거나 매사에 잘 놀라며 혹은 잠을 자려고 누워도 편안하지 않고 마음은 두렵고 무서움이 느껴지며 기가 막히고 끈적이는 침이 생기며 침과 기가 다투면서 여러가지 제반 증상이 생겨난다. 혹은 기가 짧아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핍박해진다. 혹은 저절로 식은땀이 생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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