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미국 뉴욕 맨해튼 '원월드트레이드센터'(417m), 대만 타이베이 '101빌딩'(509m) 등 마천루가 무량판 구조다. 세계 처음으로 건축물 높이 1㎞(1008m)에 도전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타워'도 마찬가지이다. 무량판은 시공효율성이 높고 상대적으로 층간소음이 적은 데다가 완공 후에도 벽을 허물 수 있어 리모델링이 수월한 게 최대 강점이다. 오랜 기간 국내 업체들이 100건 이상의 관련 특허 개발로 안전성을 끌어올린 결과다. 다양한 매력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부와 지자체도 무량판 부활의 길을 터줬다.
2007년 11월 당시 건설교통부는 '공동주택 리모델링구조 기준고시'를 통해 건축위원회 심사에서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 받으면 리모델링 용적률을 20% 더 받을 수 있게 했다. 최고 가점항목은 '세대 가변성(라멘·무량판·혼합구조)'으로 28~40점에 이른다. 2010년 2월에는 서울시도 '공동주택 건립 관련 업무처리지침'을 변경해 신규 아파트를 무량판 구조로 설계하면 용적률을 7% 높일 수 있게 했다. 분양가 인센티브도 있다. 현재 분양가상한제 아파트를 완전 무량판 구조나 무량복합구조로 조성하면 건축가산비에 각각 5%, 3% 가산점이 적용된다.
하지만 지난해 이후 발생한 사고로 일순간에 '무량판 포비아'가 짙어졌다.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업계와 정부가 20년 넘게 쌓아온 공든탑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막연한 공포는 오판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설계·시공·감리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지켜지면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무량판 구조를 싸잡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분명한 건 기둥식(라멘)이든 벽식이든 원칙대로 짓지 않으면 위험하긴 매한가지다. 부실시공, 하중 초과, 양생규정 위반, 설계오류 등이 사고의 원인이지 무량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본말전도다. '우량판'과 '불량판'의 갈림길에 선 무량판 운명은 건설업계와 당국에 달렸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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