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종합=뉴스1) 양희문 한귀섭 한송학 박민석 조아서 허진실 이성덕 한병찬 기자 = "윙~ 우리나라 전역에 훈련 공습경보가 발령됐습니다."
23일 6년 만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민방위 훈련이 진행됐다. 농부들은 농사일을 미뤄둔 채 대피소로, 학생들은 책을 내려놓고 체육관으로, 마트 이용객들은 쇼핑을 중단하고 지하주차장으로 대피하며 훈련에 동참했다. 다만 일부 시민은 공습경보를 무시하며 훈련에 동참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연막탄 터뜨리자 방독면 착용…농사일 제쳐두고 훈련 동참
23일 오후 2시 정각이 되자 접경지역으로 분류된 강원 춘천시 사북면행정복지센터에는 공습경보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주민 30여명은 농사일을 미뤄둔 채 흙이 묻은 장화를 신고 행정복지센터 대피소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곳에선 생화학 공격을 가정한 훈련이 진행됐다. 인근 군부대에서 공수한 연막탄 2개를 터뜨리며 실제 상황처럼 연출했다. 주민들은 군부대 관계자로부터 화생방 대피 요령, 방독면 착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직접 착용하는 시간을 가졌다.
방독면 착용에 애를 먹는 주민들이 있는가 하면 능수능란하게 바로 착용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서투른 주민들은 옆 사람과 관계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훈련 종료 뒤에는 심폐소생술 훈련이 실시됐다.
박종태 오탄3리 이장(70)은 "농사일을 하다가 민방위에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훈련에 임했다"며 "유용한 시간이었고, 재밌었다"고 말했다.
이례운씨(59)는 "오늘 민방위 훈련을 해보니 예전 어르신들이 하던 민방위 훈련이 생각났다"며 "심폐소생술도 배울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읽던 책 내려놓고, 쇼핑 중단하고 긴급대피
대전 갈마초에도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갈마초 5~6학년 학생 138명은 안전요원의 대피유도에 따라 질서 있게 2층 대강당으로 이동했다. 학생들은 사이렌 소리에 깜짝 놀라면서도 사전교육을 받은 터라 차분하게 교사의 지시에 따랐다. 일부 아이는 장난스럽게 소리를 지르거나 신이난 듯 웃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훈련에 참가한 학생과 교직원 170여명이 지정된 대피장소인 대강당으로 몸을 숨기는 데엔 약 4분이 걸렸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은 '한국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가이기 때문에 공습 등 실전 상황을 대비해 훈련을 진행한다'는 내용의 교육을 받고 라디오 방송을 청취했다.
부산 금정구 금샘도서관에서도 책을 읽던 학생, 성인, 노인 등 이용객들이 긴급 대피했다. 방학을 맞아 부모와 도서관을 찾은 아이 30여명은 읽던 책을 내려놓고 안내에 따라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이들은 공습경보를 발령하는 안내방송을 청취하도 이동 시 행동 요령을 익혔다.
마트 이용객들도 훈련에 동참했다. 대구 수성구 황금동 홈플러스 수성점에선 쇼핑객 40여명이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무빙워크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조용히 내려갔다. 마트에는 "훈련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이 방송은 훈련 상황입니다. 놀라지 마시고 직원 안내에 따라 대피해 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반복적으로 들렸다.
대구 수성구 황금유치원에서도 공습경보가 울리자 지진방재모자를 쓴 어린이들이 교사들의 안내로 질서정연하게 대피했다.
◇공습경보 울리자 4분 만에 도심 정적…도로엔 긴급차량만
경남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경남은행 창원영업부 앞. 오후 2시 정각이 되면서 민방위 공습을 알리는 공습경보가 울려 퍼지자 대피를 안내하는 공무원과 주부 민방위 대원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거리를 걷던 시민들은 공습경보에 일제히 계단을 따라 지하대피소로 내려갔다. 6년 만에 재개된 민방위 훈련이지만 시민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경보발령 4분여 만에 지상에는 차량통행이 통제돼 편도 4차로 대로가 일순간에 텅 비었다.
순식간에 거리의 인적이 사라지면서 분주했던 도심엔 정적이 감돌았다. 중앙동 지하대피소에는 시민 40여명이 대피해 있었는데, 이들은 공승상황에 대비한 소화기 사용법 등 안전교육을 받았다.
같은 시각 진주시에서도 공습경보가 울리자 도로 위의 일반 차량들은 모두 운행을 멈췄다. 동시에 긴급차량 실제운행 훈련도 실시됐는데, 도로에는 진주시와 소방서, 제39사단 차량만 움직였다. 또 진주 남강댐에선 국가중요시설 드론테러 대응 종합훈련이 진행됐다.
◇"전쟁이라도 났냐"…시민 참여율 저조
6년 만에 진행된 훈련이지만, 시민 참여율은 저조했다. 공습경보에도 많은 시민이 고개를 가로젓거나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차들도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청역 출구 앞에선 공무원 A씨가 인도 위 행인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몇 분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민방위 훈련으로 지하철 역사 밖으로 나가는 것이 오후 2시15분까지 통제됐기 때문이다.
오후 2시5분께 한 50대 남성은 역사 밖으로 나가다 "전쟁이라도 났냐. 비도 오는데 이래야 하느냐"고 버럭 화를 냈다. 이어 "누가 시켰냐. 바쁜 사람 잡고 이게 뭐하는 거냐”며 자리를 벗어났다. A씨는 “죄송하다"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묵묵히 훈련에 참여하던 시민들도 이 남성을 보고 자리를 이탈했다. 40대 남성 김모씨는 "다들 제 길을 가니 기다리는 사람만 손해 보는 것 같다"며 "나도 가야겠다"고 우산을 펴고 거리로 나섰다.
오일장이 열린 경기 양평군 물맑은시장은 공습경보에도 상인들과 손님들이 뒤엉켜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상인들은 사이렌이 울리든 말든 손님들을 상대하거나 가판대 물건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건어물을 파는 B씨(50대)는 "경기가 나빠 장사도 안 되는데 굳이 훈련을 참여해야 하느냐.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을 찾은 시민들도 사이렌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저녁 찬거리를 사는 데 분주했다. 한 시민은 공습경보가 듣기 싫은 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양손에 찬거리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주부 C씨(43)는 "오늘 민방위 훈련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남들이 다 같이 훈련에 동참하면 따라 하겠는데, 어느 누구도 하지 않으니 가만히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민방위 훈련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같은 공습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대피와 대응 요령을 숙달하기 위한 훈련으로, 2017년 이후 6년 만에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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