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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잔혹해진 데이트 폭력…멈춰선 처벌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23 18:24

수정 2023.08.23 21:20

[강남시선] 잔혹해진 데이트 폭력…멈춰선 처벌법
"살려줘 엄마…연락 못해요." "오면 내 몸을 먼저 확인해줘."

지난 7월 11일 A양은 자고 있는 남자친구 몰래 어머니에게 이런 메시지와 오피스텔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경찰이 오피스텔 문을 따고 들어가자 A양은 작은 울타리가 쳐진 방안에 강아지와 함께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정수리 부근은 두피가 드러난 채였다. A양 진술서에 나온 '바리깡(이발기) 성폭행남' 사건 당시 현장 상황이다. A양은 "남자친구가 이날 비가 그치면 날 죽인다고 했다.
자고 있길래 몰래 문자를 보내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A양은 B씨와 1년 이상 사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B씨의 집착이 심해지고 행동도 거칠어졌다고 한다. A양에겐 남녀를 불문하고 그 어떤 또래 친구와도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 가해자 B씨는 피해자와 강제동거에 들어갔다. 피해자 측과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오피스텔 안에서 가해자는 이발기를 가져와 여자의 머리를 밀고 욕과 함께 배설행위를 했다. 성폭행한 후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고는 "도망가면 바로 뿌리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CCTV에 찍힌 장면에는 피해자가 다리를 절뚝였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다리를 집중적으로 맞았기 때문이다. 피해자에 따르면 가해자가 여자의 도망을 막기 위해 일부러 경기도 외곽 신축 오피스텔을 동거장소로 골랐다고 한다.

경찰은 이런 범죄를 '데이트폭력'으로 분류한다. 충격적 사건이지만 실제로는 주변에서 생각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만2841건의 데이트폭력 검거사례가 집계됐다. 전년 대비 21.7% 늘었는데 8년 전인 2014년(6675명)과 비교해선 92.4% 급증했다. 신고건수는 지난해에만 7만건을 넘어섰다. 피해 정도는 반복적 폭언, 폭력, 성폭력, 주거침입, 감금, 살인까지 다양하다. 단순 경범죄에서 중범죄까지 모두 아우른다는 얘기다.

데이트폭력을 줄이기 위해선 강력한 처벌이 우선돼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안타깝게도 국내법은 강한 처벌이 쉽지 않다. 수사기관은 데이트폭력을 범주화했지만 국내 사법체계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해외처럼 데이트폭력도 '가정폭력 처벌법' 범주에 넣거나, '데이트폭력 처벌법'을 따로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다. 관련 법안이 이미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구속된 가해자도 느슨한 법 제도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가해자는 3명의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변호인단 중에는 검찰과 초대형 로펌을 거친 전관 변호사도 포함돼 있다. 피해자는 지금까지 5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는데, 가해자는 "상대가 동의했다"는 진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사건과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면, 가해자를 엄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법안 정비에 속도를 내야 한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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