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제친 전기차 1위
무한실험 괴짜 엔지니어
中전기차 굴기 상징되나
무한실험 괴짜 엔지니어
中전기차 굴기 상징되나
배터리 제조사 BYD가 망해가던 시안친촨자동차를 인수한 때가 2003년이었다. 그로부터 20년도 안 돼 글로벌 전기차(PHEV 포함) 시장 최강자가 된 것은 분명 진기한 기록이다. 미국 테슬라를 2위로 밀어낸 BYD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지난해보다 올 들어(1~7월) 더 높아졌다.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테슬라의 벽은 여전히 높지만 세계 차업계가 BYD 폭풍성장세를 느긋하게 지켜만 볼 형편은 아닐 것이다.
왕은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의 요란함이나 알리바바 회장 마윈의 쇼맨십과 거리가 멀다. 공식행사 외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비슷한 나이의 중국 테크기업 창업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워라밸 기질도 전혀 없다. 많은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항상 일만 한다." 안후이성 빈한한 집안의 8남매 중 일곱째. 가난에 대한 기억은 세계의 거부가 된 지금도 강렬하다. "가난은 내게 독립심, 사고력, 실천력을 주었다."(신둥팡그룹 위민훙 회장 대담)
BYD의 시작은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사촌에게서 250만위안(4억5000만원)을 빌려 선전의 어느 허름한 창고에서 배터리 회사를 차렸다. 그때가 휴대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5년이다. 대학에서 화학과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베이징 주요 연구기관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은 뒤였다.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던 일본산 배터리를 사들고 와 직접 분해한 뒤 상업용 배터리의 작동원리를 알아냈다. 생산라인을 확 바꿨다. 해외 공장의 값비싼 로봇이 하던 일을 저렴한 노동자들이 하게 했다. 당시 일본산 배터리 소매 단가는 8달러였는데 BYD는 3달러밖에 안 됐다. 가성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BYD의 핵심 경쟁력이다.
전기차 도전은 배터리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배터리의 미래예측 방향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전기차 운명을 결정한다." 주변의 극렬한 반대에도 차사업에 손을 대며 그가 한 말이다. 천문학적 비용을 연구개발비로 쓰며 배터리 성능을 향상시켰고, 핵심재료인 리튬 광산까지 사들였다. 차량용 반도체칩 개발도 완료해 세계적으로 처음인 전기차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테슬라를 제친 바탕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진과 침체, 실패의 쓰라린 순간도 왜 없었겠나. 전기차에 막대한 보조금 혜택을 주던 정부가 고비마다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정부는 BYD 전기차를 시범사업 모델로 선정해 선전 시내 2만대 이상의 택시를 BYD의 2011년 신차 E6로 바꾼 적도 있다. BYD는 E6 이후 역대 왕조(진·한·당·송·원) 이름을 차명에 붙였다. 왕은 서구가 과거 중국을 얕잡아본 것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며 이런 작명을 고집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BYD 질주는 이제 시작일 수 있다.
BYD의 진정한 승부는 해외에서 결판이 날 것이다. 중국 다음으로 큰 전기차 시장인 유럽 공략은 이미 시작됐다. 국내 상륙도 임박했다. 고성능 브랜드 선호가 뚜렷한 국내나 해외 시장에서 중저가 이미지의 BYD가 넘을 산은 많다. 당장 유럽연합(EU)이 최근 꺼낸 대대적인 반보조금 조사 카드도 큰 부담이다. 하지만 "라이벌보다 강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소신으로 무한실험을 반복하는 괴짜 엔지니어 회장을 둔 BYD에 신경은 쓰인다. 세계 공급망에서 쫓기는 중국 정부의 전기차굴기 집념은 더 타오를 것이다. 우리의 대비는 그에 충분한가.
jins@fnnews.com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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