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모발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된 피의자가 타고 다닌 차에서 필로폰 주사기가 발견됐어도 투약 시점이나 DNA 등 검사에서 주사기 사용인을 특정하지 못했다면 마약 투약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7월 경찰로부터 필로폰 투약 혐의로 소변과 모발 검사를 받았는데 모발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당시 경찰은 A씨가 2020년 1월부터 6월 사이 필로폰을 투약한 것으로 의심했다. 문제는 당시 압수된 모발 길이가 4~7cm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통상 마약 수사를 할 때 모발을 3cm씩 잘라 투약 시기를 판별하는데 이 같은 구간별 감정이 이뤄지지 않아 A씨는 결국 풀려났다.
그런데 한 달 뒤 A씨 무면허 운전과 뺑소니 혐의를 수사하던 다른 경찰서가 차량 압수수색 과정에서 주사기와 고무호스 등 마약 투약에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도구들이 발견됐다. 주사기에서는 필로폰 성분까지 나왔다.
다시 실시된 A씨 모발 검사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지만 소변 검사에선 검출되지 않았다. A씨 모발 구간별 감정 결과, 모근에서 3㎝, 3~6㎝, 6~9㎝ 구간에서 모두 필로폰 성분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1차 압수수색 당시인 7월부터 2차 압수수색을 한 8월 사이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다만 정확한 날짜와 장소 등은 특정하지 못했다.
이같은 A씨의 필로폰 투약에 따른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씨가 어느 시점에서 필로폰을 투약했는지 특정할 수 없다고 보고 무죄 판결했다. 다만 교통사고를 내고도 도주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사고후미조치·무면허운전 부분은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120시간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반면 2심은 A씨의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를 유죄로 보고 1심 판단을 뒤집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사고후미조치·무면허운전 부분의 유죄 판단은 1심과 같았다. 이에 따라 2심은 A씨에게 징역 1년2월, 약물중독 재활교육 40시간 등을 선고했다.
2심은 모근 부위에서 길이 약 3㎝까지 모발에서 필로폰이 검출됐고, 주사기가 나온 차량을 운전한 점 등을 근거로 A씨의 필로폰 투약 혐의를 유죄로 봤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1심과 같이 A씨에게 마약류 투약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모발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더라도 필로폰 투약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면 검사가 제출한 '2021년 7월4일부터 8월5일까지 필로폰을 투약한 점'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특히 필로폰 주사기가 나온 차량은 법인 차량으로 A씨 외에도 여러 사람이 사용했고, 두 차례의 소변 검사에선 필로폰이 검출되지 않은 점 등도 판단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증거재판주의, 자유심증주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위반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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