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외래어로 가게 정체성 표현"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안돼" [입장 들어봤습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19 18:31

수정 2023.09.19 18:51

외국인 관광객 이해도 높일 수 있어 별도의 간판 제재 불필요
노년층 불편 없도록 한글 병행 표기 등 대안 마련 목소리도
일각선 "한글간판이 더 세련… 국적불명 외래어 자성해야"
한글날인 지난해 10월 9일 한 시민이 외국어 간판이 즐비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번화가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글날인 지난해 10월 9일 한 시민이 외국어 간판이 즐비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로 번화가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M.S.G.R'이라는 단어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한 카페의 메뉴판에 있던 단어인데 무슨 음식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M.S.G.R'의 정체는 해외 음식도 아닌 국내 전통 음료인 '미숫가루'였다. 비슷한 사례로 예전 도로 바닥에서 볼 수 있었던 'K&R'이 있다. '키스 앤 라이드(Kiss and Ride)'를 의미한다.
단어의 의미를 알아도 도로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는 게 일반적이 반응이었다. 'K&R'은 헤어질 때 입을 맞추며 인사하는 영어권 문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해당 장소에서 차를 잠시 멈추고 운전자는 내리지 않지만 동승자가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뜻을 들어도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는 비판 여론에 지금은 우리말인 '환승정차구역'으로 변경됐다.

상점과 지자체 등이 외국어를 지나치게 남용하자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외국어 간판이라는 벽을 어렵게 넘어 식당에 들어가게 되면 이번에는 외국어로 된 메뉴판이라는 벽을 만나게 된다.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글을 더 많이 쓰거나, 외국어와 함께 병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론도 존재한다. 외국어 간판이나 메뉴판 등이 불법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외국어 사용 역시 업종 또는 매장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용자들이 불편을 호소한다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될 것이니 제재 등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옥외광고물 관련법에 따라 면적 5㎡ 미만이거나 건물 3층 이하에 표시된 간판은 한글 표기가 없어도 과태료 같은 제재를 받지 않는다.

■ "이제는 한글이 더 세련됐다"

19일 만난 시민들은 간판이나 메뉴판, 단어 등에서 나타나는 지나친 외국어 사용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고모씨(35)는 "매장의 경우 인테리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간판, 메뉴판 등에 영어 등 외국어 표기가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며 "마케팅 수단이 된 SNS의 영향력이 지속되는 한 이런 흐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한모씨(35)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왔지만 영어 간판이 많지 않았다"며 "우리 스스로 한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글표기가 더 세련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최모씨(48)는 "옛날에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앞서가는 것이고 멋진 것이라는 이미지가 존재했다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며 "케이팝(K-POP) 등 한류가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시기인데 우리가 한글을 무시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나친 외국어 사용이 개인의 자유라서 간섭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위한 대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인 김혜진씨(30)는 "'M.S.G.R'를 봤을 때는 사실 문화충격을 느꼈다"며 "식당이든 카페든, 공공장소든 영어로만 정보를 전달한다면 나이가 많은 분들이나 어린이들이 소외될 수 있다. 영어로 표기한다면 한글을 병기하는 등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손정모씨(36)도 "외국어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어 (외국어 활용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노년층을 위해 공공시설, 생활필수시설에서는 한글 사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봤다.

■ "개인의 자유, 문제 안 된다"

표현은 개인 자유인 만큼 언어 사용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컸다.

직장인 유모씨(36)는 "영업의 일환으로 가게 외관이나 인테리어를 꾸미는 것은 사업자가 판단할 영역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지 않으면 된다"며 "관심을 받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외국어 표기가 많아지면 노년층 등의 접근이 어려워질 수 있겠지만 애초에 이런 가게가 겨냥하는 소비층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직장인 A씨(40)는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이국적인 콘셉트에 대한 수요가 많은 시대적 분위기도 있다"며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개인이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교육 수준이 높아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왔다.

대학생 정모씨(24)는 "이미 영어가 익숙해진 상황이고 식당 등에 볼 수 있는 외국어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 괜찮아 보인다.
오히려 관광객들에게는 도움이 된다"며 "외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도 하나의 언어적 현상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봤다.
변경진씨(34)의 경우 " 한글 표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불필요한 수준까지 외국어로 표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강명연 노유정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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