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입시제도 개편, 사교육 경감의 열쇠…출혈적인 경쟁 없애야" ['사교육 공화국' 대한민국]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19 18:00

수정 2023.09.19 22:59

정성국 학벌주의 폐해 줄일 킬러문항 배제·카르텔 근절 방향 동의
정제영 '교육격차 곧 소득격차' 저출산·노후 불안 등 사회문제 야기
임성호 고액 수강료가 문제… 향후 10년 사교육시장 이과 중심 재편
신소영 공교육 목표, 입시가 돼선 안돼…'절대평가' 도입 고려를
10·<끝> '사교육 경감' 교육전문가 4인에 듣는다
(좌측부터)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좌측부터)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초고난도 '킬러문항'을 배제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교육 경감에 대한 전망은 아직 낙관적이지 않다. 뿌리 깊은 사교육 카르텔이 그 요인 중에 하나다. 교육부가 지난 8월 1~14일 사교육 업체와 연계된 교사 영리행위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한 결과 사교육업체에 문항을 판매하고 수능·모의평가 출제에도 참여한 현직 교사가 다수 적발됐다. 교육부는 총 24명의 현직 교사에 대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공동으로 고소 및 수사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학원에 문항을 팔아 약 5억원의 이득을 취한 현직 교사가 있을 정도로 사교육 카르텔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역대 정부들이 각종 사교육 억제정책을 펼쳤지만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26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사교육비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 정성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사교육비 증가의 근본 원인은.

▲정성국=학벌주의 영향이 크다. 학벌에 따라 직장이 선택되는 시스템이 문제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사교육에 돈을 많이 쓰나 하는데, 결국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기업에 취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들이는 게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인식하는 것.

▲정제영=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시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에 학생 성적을 높이기 위해선 돈을 쓸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수준별 차이가 있는데 학교에선 동일한 교육을 동일한 속도로 진행한다.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교육을 받는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는 학생이 나오게 된다.

▲임성호=초등학교, 중학교 단계에서 학교 시험이 없고 공교육 현장이 아이를 너무 자율적으로 내버려두는 측면이 있다. 학부모 입장에선 내 아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하고 불안할 수 있다. 학교에서 평가와 처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다.

―공교육이 부실한 것일까.

▲신소영=공교육이 부실하다는 근거가 무엇일까. 공교육이 현행 입시제도에 최적화된다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학교 교육은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는 목적만 있는 게 아니다. 공교육을 입시제도에 맞춰 바라봐선 안 된다. 적절한 평가제도와 입시제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정성국=선생님이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사교육이 증가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동의할 수 없다. 수능체계에서 킬러문항이 등장하는 것을 공교육에선 감당할 수 없다. 학교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교육이 있다. 선생님이 킬러문항에 접근하는 방식을 가르친다면 공교육이 무너지는 것이다.

―국내 사교육의 문제점은.

▲신소영=사교육이 공교육을 보완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재적 기능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공교육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교육을 소비하는데, 우리나라는 공부를 잘할수록 사교육을 더 많이 받는다. 또한 사교육비를 지출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 간의 양극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임성호=몇몇 성공사례를 일반화하고 부풀려 만드는 착시효과가 있다. 사교육도 공교육과 비슷한 선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데 지나치게 고액화된 수강료도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정성국=사실 사교육 자체를 나쁘게 볼 수는 없다. 학교가 개별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깊이 있게 하긴 어렵다. 부족한 학생들은 사교육이 필요할 수 있다. 자기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을 보완하는 게 무엇이 나쁘겠나. 다만 교육시스템이 입시에 치중돼 사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만 혜택을 받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교육을 시키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학부모가 봤을 때는 교육마저도 불공평해야 하나 싶을 수밖에 없다.

―사교육 증가가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정제영=가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현재 부모들이 소득의 상당 부분을 자녀교육에 투자하는데, 이것이 향후 노후준비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아이들이 겪는 고통도 너무 크다. 아이들이 소화할 수 없는 수준의 너무 많은 지식에 노출돼 있다. 과도한 경쟁 탓에 교육이 선행학습으로 변질되고 있다.

▲정성국=사교육이 증가한다는 건 교육격차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가 많고, 공부해서 계층이동하는 사례도 많았는데 지금은 안 그렇지 않나.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은 결국 저출산 문제로까지 이어진다고 본다.

―킬러문항 배제 등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정부 대책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임성호=시험이 쉽게 출제되든, 어렵게 출제되든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경쟁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상위 5~10% 학생들에게는 한두 문제가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일반 학생들은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수능은 대입의 한 부분일 뿐이고 수시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정성국=킬러문항 배제나 사교육 카르텔 근절의 방향에는 동의한다. 다만 일정 부분 효과는 있겠지만 큰 영향을 끼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교육 시장의 대응이 빠르다 보니 풍선효과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단기 대책보다 중장기적 대책이 나와야 한다.

―AI디지털교과서 도입이나 고교학점제 같은 교육부 '맞춤형 교육'으로 기대되는 효과는.

▲임성호=인터넷 강의가 나온다고 해서 사교육이 없어졌나. 학습 도구와 방법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지금이라고 해서 AI가 없고, 기자재가 없어서 사교육을 받는 게 아니다.

▲신소영=부정적으로 본다. 기술이나 매체를 동원했을 때 자기주도 학습능력이 없는 학생들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코로나 유행 당시 원격수업할 때도 사교육 경감 효과는 없었다. 기술 자체로 기존 사교육을 경감할 수 있다고 보는 건 굉장히 나이브한 시선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신소영=대학 간 격차가 너무 크고 학생과 학부모가 선호하는 대학이 너무 소수에 한정돼 있다. 임금격차나 사회양극화가 심하기 때문에 노동과 임금을 포함한 사회 구조개선이 수반돼야 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이를 개선할 청사진을 내놓아야 사교육비를 경감할 수 있다.

―대입제도 개편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

▲정성국=수능이 1994년부터 시작됐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나. 시험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2025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교에 큰 변화가 올 텐데 수능도 이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다만 수능체계를 바꿨을 때 나타나는 변수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긴 하다.

▲신소영=절대평가가 도입돼야 한다. 지금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1등을 하는 학생도 따라잡힐 것이 두려워 사교육을 더 받는 구조다. 출혈적이고 낭비적인 경쟁이 이어지는 것. 절대평가는 일정 수준 이상만 도달하면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목표치가 명료해진다. 학부모에게는 공교육 안에서 수능 대비가 가능하다는 사인이 될 수 있다.

▲정제영=학교교육 과정에서 정상적 교육을 받은 학생이 잘 선발될 수 있다면 사교육보다는 학교 교육에 무게가 맞춰질 것이다. 수능을 중심으로 하는 정시 선발은 과도해선 안 된다. 정시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은 결국 학교 교육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의대 쏠림현상, 이과 강세가 이슈다. 사교육 증가에 미치는 악영향은.

▲임성호=사교육 시장이 이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과거 문과 최고 전성기였을 때 문과생 비중이 67%까지 간 적이 있다. 이런 추세라면 이과 비중도 60~70%까지 확대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초·중학교 단계부터 아이를 이과 중심으로 키우려고 할 거고, 사교육 시장은 이에 대응하는 모델을 만들 것이다. 현재 정부도 반도체 등 이과중심 정책을 내놓지 않나. 향후 10년간은 이과에 대한 사교육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학령인구가 줄고 있다. 사교육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정제영=전체 사교육비는 줄겠지만 일인당 사교육비까지 줄기는 어려워 보인다. 치열한 경쟁체제가 유지되고 지금과 같은 평가방식이 지속된다면 사교육은 되레 증가할 수도 있다. 학생 수가 줄면서 대학의 학생 선발권한보다 학생의 대학 선택권이 늘어날 것이다. 다만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은 앞으로도 갈 수 있는 학생만 가지 않겠나.

―내년에는 사교육비가 줄어들까.

▲임성호=앞으로 대입제도 개편안이 나올 텐데 이로 인한 불안감을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상황을 종합해 본다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요인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학원에선 재수생과 삼수생이 늘고 있다. 수능을 치르는 고3 학생 수는 줄고 있으나, 현 고1이 수능을 치를 때면 응시자가 다시 47만명까지 늘어난다. 입시경쟁은 현재보다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에 1~2년 사이에 사교육비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긴 어렵다.

▲신소영=사교육 비용 경감이 정책의 목표인지, 사교육 자체 경감이 목표인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현 정부는 전자다. 예컨대 방과후프로그램이나 EBS 수능 연계출제 강화 같은 것은 사교육을 통해 소비하던 것을 공공의 비용을 써서 들여오는 것이다. 이 방식의 사교육 수요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상위권 학교를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계속해서 사교육에 돈을 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학생을 줄 세우는 선발체계를 변화해야만 사교육식 학습이 줄어들 여지가 있다.

▲정제영=우리나라는 이미 2012년에 사교육비를 줄인 사례가 있다.
당시는 특목고 입시에 대한 문제가 완화된 해였다. 입시제도를 얼마나 바로잡을 수 있느냐가 사교육비 경감에 열쇠가 될 것이다.
방과후활동을 내실화하고 돌봄을 강화하는 방안도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것이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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