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기준 460개 이상의 반도체 기업이 칩스법에 따른 보조금을 비롯한 지원을 지원받기 위해 투자의향서를 제출했으며, 법안 시행 후 1년 동안 반도체 및 전자기기 제조와 관련해 1660억 달러 규모의 기업 투자 발표가 공개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측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로 HSMC, 칭화유니 등 자국 대표 반도체 기업이 줄줄이 파산과 구조조정을 겪자 갈륨 등을 비롯한 자원 무기화로 반격에 나섰다.
美상무부 "中에 한 푼도 안 돼"
지난 5월까지 의견 수렴에 나선 미국 상무부는 조만간 가드레일과 관련된 규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러몬드 장관은 이날 "반도체 프로그램 전반의 목적은 국가안보"라며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중) 단 한 푼도 중국이 우리를 앞지르는 데 도움을 주지 않도록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식으로건 우리 국가안보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중국 투자 내지 연구를 진행하는 기업 어떤 곳도 우리의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면서 "가드레일 규정이 확실히 시행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기업에도 (보조금) 지원을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드레일 규정 준수가 보조금 지급의 판단 요소임을 재확인했다.
中 생산기지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정중동' 행보
현재 삼성전자는 약 33조원을 투자한 시안 1·2공장에서 128단 낸드플래시를 생산 중이다. 이곳은 삼성전자 전체 낸드 생산량의 40%가량을 책임지고 있다. 해당 공장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25만장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중·후반~20나노 초반 D램을, 다롄에서 96단과 144단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공장을 25조원가량 투자해 운영 중이다. 우시공장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18만장의 D램을 생산한다. 이는 회사 전체 D램 생산량의 48%가량이다. 2020년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공장도 월 10만장 규모의 낸드플래시를 양산 중이다.
양사 모두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의 결정을 예의주시 중이며 이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지난 상반기(1~7월) 대미 로비에 역대급 지출에 나서며 물밑에선 치열한 협상을 벌이는 모양새다. 미국 정치자금 추적 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7월) 삼성그룹(삼성반도체·삼성전자아메리카·삼성SDI아메리카)의 미국 로비자금은 325만달러(약 42억2760만원)로 집계되면서 상반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액수인 526만달러를 집행한 SK하이닉스도 올해 상반기 227만달러를 로비 비용으로 지출하면서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다.
美中 반도체 전쟁 최대 피해자는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측은 "미국의 대중 수출 제한 조치를 엄격히 준수하고 있다"면서 "경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러몬도 장관은 이날 "그들(중국)이 7나노 규격을 생산할 수 있다는 증거는 없다"라며 "언제가 됐건, 어떤 기업이건 우리의 수출통제를 우회한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있다면 우리는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2020년 9월 이후부터 화웨이와 거래하지 않고 있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제3국을 통한 우회입국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중국 화웨이가 미국 제재 이전 모아 놓은 SK하이닉스 반도체를 이번 신제품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국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중 반도체 유통 구조를 다시 한번 면밀히 살필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악의 상황은 SK하이닉스가 미국의 대중 규제를 어긴 이력이 드러난다면 미국의 제재를 받게되는 시나리오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오는 10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미국으로부터 받은 반도체 장비 중국 내 반입 유예 기간이 끝나는데, 이번 사건이 해당 유예 연장 결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추가 장비 반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책임지는 중국 공장에서 구형 반도체만 계속 생산해야 한다.
자원 카드로 반격 나선 中
업계에서는 중국이 적극적인 제재를 나서고 있는 미국·유럽연합(EU)·일본 뿐만 아니라 이들의 핵심 공급망 파트너에까지 자원무기화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희토류를 비롯해 중국이 갖고 있는 핵심광물을 미국과 경쟁 상황에 따라 확대하는 전략을 사용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또 중국은 최근 공무원과 기밀 정보 등을 취급하는 업체 관계자들에게 '아이폰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며 반격에 나섰다.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며칠간 애플의 주가가 하락하며 시가총액 2000억달러(약 265조8000억원) 이상이 사라졌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금지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美·中간 눈치보겠지만, 결국은...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 있어서 중국에 대한 제재 완화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수차례 천명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은 점진적 탈(脫)중국에 나서 미국 주도의 새 공급망 질서를 준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관계자는 "미국이 유예조치를 연장하고, 가이드라인 조항이 예상보다 완화된 내용이 공개되더라도 이는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현상 유지 후 탈중국 준비 시간을 벌 수 있도록 배려한거지, 중국 내 사업에 대한 허가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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