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강 해이는 숫자로도 증명되고 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경찰 징계건수는 283건으로 연간 500건을 넘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4년간 500건을 넘은 적은 없었다. 올해 9월까지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경찰관은 60명을 넘어 지난해 전체 건수(55명)를 넘었다.
경찰 내부에서는 '소명의식 부족'을 배경으로 꼽고 있다. 서울 번화가 지구대의 한 경장은 "신입 경찰들은 '경찰관'이라는 의식보다는 직장인이라는 인식이 크다"며 "법 집행기관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해도 몸으로 와닿아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결과적으로 직업 소명의식이 없는 경찰관에게 도덕, 법 준수 등 책임은 먼 이야기로 치부당한다.
전문가들은 '교육, 처벌 시스템 강화' 등 제도개선을 지적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8월부터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문제를 일으킨 직원의 관할 경찰서장을 직위해제했다. 이후 백남익 서울수서경찰서장 등 3명이 직위 해제되고 대기발령 조치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직원들의 음주운전, 성폭행 등은 끊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처벌보다 소명의식, 다시 말해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책임감은 위에서 나온다. 리더는 개인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소명의식을 심는다. 어쩌면 윤 청장의 8월 조치는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 처벌 내린 주체 역시 경찰 직원들의 '최종 심급'인 경찰청장이다. 직원들의 책임감을 부여하는 주체가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처벌만 내린 셈이다. 이 때문에 8월 조치는 소리만 요란했지 '내부 기강 잡기'와 '여론'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쳤다.
리더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미 비위행위자는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별치안활동에 마약 연루자까지 나온 상황이다. 윤 청장은 대중을 향해 통렬히 반성하고, 조직 기강 쇄신 의지를 공표해야 한다. 그래야 여론이 지지하고 직원이 존경한다.
이진혁 사회부기자 beruf@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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