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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석 칼럼] 한강에 수상버스 띄운다는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27 18:30

수정 2023.09.27 18:30

한강은 옛 한강이 아니라
거대한 인공호수로 변해
자연성 회복이 시급과제
[노주석 칼럼] 한강에 수상버스 띄운다는데
한강의 옛 모습을 아시는가? 겸재 정선이 1741년에 그린 진경산수화 '압구정'을 보면 잠실 쪽에서 바라본 한강의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강 건너편은 두모포로 오늘의 옥수동이다. 두모포 뒤편으로 남산이 보인다. 권신 한명회가 노후를 보내려고 지은 '갈매기와 사귀는 정자'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11동 어림이다. 겸재는 '경교명승첩'과 '양천팔경첩'에 예술사진 뺨치는 한강 그림 수십 점을 남겼다.


한강은 불과 반세기 만에 천지개벽을 했다. 물길이 뱀처럼 구불구불 굽이치는 곳에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섬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와 바람에 나부끼는 수양버들, 갈대가 지천인 자연하천은 사라졌다. 조선시대 한강의 이름은 경강이었다. 삼전도(송파)에서 양화진(합정)까지를 경강이라고 불렀다. 남산 기슭 한강진 나루터 일대를 지칭하던 한수가 한강의 어원이다.

시인 T S 엘리엇은 "역사란 언제나 동떨어진 원인에서 기묘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파했다. 옛사람들은 한강을 하나의 강이 아니라 동호, 서호, 남호, 행호로 나뉜 4개의 호수라고 미화했다. 동호는 동호대교 아래이고, 서호 혹은 서강은 마포 지역이다. 용산강으로도 불린 남호는 동작진과 노량진 구간이다. 행호는 행주대교 일대를 말한다.

한강은 시인 묵객들의 문화공간이자 풍류의 장이었다. 19세기 초만 해도 매년 1만척을 헤아리는 황포 돛배가 사람과 물자를 싣고 오가던 물류의 강이었다. 광적인 인구의 서울 집중과 한국전쟁 이후 휴전선 한강철책이 설치되면서 한강 잔혹사를 초래했다.

세월이 흘러 한강은 진짜 호수가 됐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정타는 1967년 제1차 한강개발과 1982년 제2차 한강종합개발이었다. 한강은 잠실대교 아래 잠실보와 김포대교 아래 신곡보라는 2개의 수중댐에 갇힌 거대한 어항이 됐다. 수심 2.5m의 인공호수는 텅 비었다. 석도, 무동도, 부리도, 저자도, 선유도, 백마도는 한강변을 메워 택지를 조성하는 골재로 쓰였다. 잠실도와 뚝섬, 서래섬, 여의도, 난지도는 이름만 섬일 뿐 육지가 됐다.

크고 작은 섬들이 사라지면서 모래톱과 습지도 더불어 자취를 감췄다. 여름에는 강수욕장으로, 겨울엔 스케이트장과 썰매장으로 변신했던 한강은 이제 없다. 60㎞에 이르는 콘크리트 호안에 갇힌 강폭 900m의 드넓은 강물은 마치 비행기 활주로를 닮았다. 모두 3차례의 한강개발로 말미암아 한강의 풍광과 쓰임새가 달라졌다.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판이다. 최고 2㎞에 이르던 강폭은 아파트와 도로로 둔갑했다. 물줄기가 끊기고, 섬이 사라진 한강은 아예 다른 강이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라는 1991년에 나온 유행가의 가사는 실현되지 않았다. 유람선과 요트가 떠 다니는 한강은 한바탕 꿈이었다.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건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도 구호만 요란했을 뿐 한강 복원에는 손이 미치지 않았다. 2011년 박원순 시장의 수중보 철거 선거공약도 무위로 돌아갔다.

목하 오 시장이 내년 9월 운항을 목표로 한강 수상버스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로 이름을 바꾼 듯하다. 영국 런던 템스강의 리버버스가 그 모델이다. 그러나 출퇴근용 리버버스는 6년 전 서울시가 추진했다가 타당성 조사 결과 낙제점을 받아 폐기된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또 신곡수중보는 여전히 한강 서해 쪽 수계를 차단하고 있다. 수중보가 있는 한강은 반쪽짜리다.

한강변 접근성도 나아진 게 없다. 올림픽대교와 강변북로 그리고 강변 아파트숲과 둔치가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있다.
현재도 운행 중인 수상택시와 유람선이 파리를 날리는 까닭이다. 관광용 유람선도 장사가 안 되는데 출퇴근용 수상버스가 유지될지 의문이다.
'눈에 보이는' 수상버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한강의 자연성 회복이 백배 천배 더 화급하다. 한강의 옛 모습이 그립지 아니한가.

노주석 논설고문 jo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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