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황 지지부진, 분단 시나리오 수면 위로
내년 대선 앞둔 푸틴은 전쟁 멈출 생각 없어
서방 피로감 증폭 '정치적 해법' 가능성 커져
내년 대선 앞둔 푸틴은 전쟁 멈출 생각 없어
서방 피로감 증폭 '정치적 해법' 가능성 커져
[파이낸셜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년 7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우크라가 한국같은 분단 국가가 된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전쟁을 계속한다는 뜻을 분명히 내비쳤으며 그동안 우크라를 지원하던 국가들 사이에서는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처럼 분단 가능성
25일(이하 현지시간)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에 따르면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8일 우크라 키예프에서 열린 국제 정치 포럼인 얄타유럽전략(YES) 컨퍼런스에 화상으로 참여했다. 그는 우크라 국민이 평화를 위해 영토 일부를 포기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우크라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가 영토를 포기하든, 계속 싸우든 간에 지원을 이어간다고 내다봤다.
엘 파이스는 그동안 우크라 정부가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지만 나라 안팎에서 제기되는 분단 가능성에 대해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막후에서 진행 중인 수상한 (평화) 협상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엘 파이스에 의하면 이날 YES 회의에는 우크라 의회에서 최장 2040년까지 추정하여 요약한 4가지 시나리오가 담긴 보고서가 등장했다. 보고서에는 ▲러시아가 다른 흑해 연안 국가까지 침공하여 세계 대전을 유발하는 상황 ▲우크라가 영토를 양도하여 휴전한 이후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확산하여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우크라에 독재 정부가 들어서는 상황 ▲우크라가 다수의 자치국으로 분열되는 상황 ▲우크라가 승리하여 러시아군을 영토에서 몰아내는 상황이 묘사되었다. 한반도식 분단은 영토를 일부 포기하는 2번째 시나리오에 포함되어 있다. 우크라와 이웃한 슬로바키아의 한 정부 관계자는 엘 파이스에 우크라의 독재 정권 탄생이 가장 걱정된다고 밝혔다. 미국의 저명한 소련학 전문가인 스티븐 코트킨 프린스턴대 역사 교수는 지난 8월 인터뷰에서 우크라가 "전쟁에서 이기지 못해도 지속하는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을 예로 들며 한국이 휴전 이후 미국과 새로운 안보 체제를 갖춘 것처럼 우크라가 유럽연합(EU)과 비슷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승리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코트킨은 지난 7월에도 "한국은 모든 영토를 얻지 못했지만, 휴전 이후 안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불완전한 해법이지만 한국은 이제 세계적으로 번성하는 사회를 이루었다. 우크라도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선 앞둔 푸틴, 전쟁 박차
내년 3월 17일에 대선을 치르는 푸틴은 서방의 제재에도 전쟁을 계속할 뜻을 내비쳤다. 내년 대선에 승리하면 5선 대통령이 되는 푸틴의 지지율은 현재 80%에 육박하며 대선 전에 구체적인 전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푸틴은 지난 2020년 국민투표를 통해 연임 기록을 초기화하면서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후 3연임에 성공할 경우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매체 알 아라비야는 지난 25일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를 인용해 푸틴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에게 10월까지 기한을 주고 우크라의 반격 저지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ISW는 러시아 내부 정보를 입수했다며 푸틴이 쇼이구에게 반격 저지 이후 대도시에 대한 공격 준비를 명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쇼이구가 푸틴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러시아군의 피해를 감수하며 우크라를 무차별 공격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아울러 푸틴은 부족한 병력을 메우기 위해 다시 용병으로 눈을 돌렸다. 영국 정부 등은 푸틴이 내년 대선 때문에 대대적인 동원령을 내리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푸틴은 28일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창립멤버인 안드레이 트로셰프와 면담했다. 푸틴은 이번 면담에서 바그너그룹 용병으로 이뤄진 지원병이 우크라 전선에서 활동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바그너그룹은 지난 6월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주도한 반란 이후 우크라 전선에서 이탈했다.
같은날 러시아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내년 예산안 초안에 대해 국방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공개된 초안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6%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2024년 국방비 지출은 10조8000억루블(약 150조8000억원)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우크라 침공 직전의 약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전쟁 피로에 서방 균열
반면 그동안 우크라를 지원했던 유럽 국가들은 추가 지원에 회의적인 분위기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 20일 폴란드 무기 현대화를 위해 "더는 우크라에 무기를 이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폴란드는 농업 보호를 위해 우크라 농산물 수입 금지에 나섰고 이에 우크라 정부는 폴란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폴란드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은 농촌 지역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는 만큼 우크라 농산물에 매우 민감한 상황이며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있다. 동시에 현지에서는 우크라 지원에 반대하는 우파 연합인 '자유독립연맹'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젤렌스키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폴란드의 조치가 러시아를 돕는 "정치적 연극"이라 비난했다.
미국 역시 우크라를 추가 지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내년 예산안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우크라에 추가 지원을 하지 말고 국경 강화에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경파들은 국토안보부 예산을 늘려 국경 장벽 건설을 재개하고 밀입국자 단속 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화당 강경파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진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조지아주)은 26일 "나는 확실하게 미국의 국방 예산에 투표할 생각이다. 하지만 돈이 우크라로 간다면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는 SNS를 통해 바이든이 과거 부통령 시절 차남을 위해 우크라에 외압을 가했으며 우크라 정부가 바이든의 치부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며 바이든의 우크라 지원을 비난했다. 26일 공화당 소속의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캘리포니아주)은 이날 여당 주도로 가결된 상원의 임시 예산안에 대해 "우크라를 미국인보다 우선하는 정책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왜 우리는 국경 문제와 다급한 일을 함께 다루지 않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크라는 지난 4개월 동안 반격에 나섰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곧 우크라에는 땅이 진창으로 바뀌는 '라스푸티차'와 겨울이 다가와 반격 시간이 촉박하다. 미 CNN은 우크라가 앞으로 몇 주 동안 큰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서방 정치인들이 전쟁의 정치적 해결을 논의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년에 열리는 미 대선을 언급하고 트럼프가 다시 당선된다면 우크라 지원이 축소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문은 일부 서방 정부들이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해 이미 약속한 우크라 지원을 확정하고 차기 미 정부의 지원 축소를 제한할 방법을 모색중이라고 전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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