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권투 선수 출신 작가 오스틴 리의 국내 첫 개인전 '패싱 타임(Passing Time)'이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6일 개막한 이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은 무엇일까.
30일 주최 측인 롯데뮤지엄에 따르면 오스틴 리의 이번 전시에는 '파운틴(Fountain)' 등 기쁨과 슬픔, 사랑, 불안 등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 50여점이 나왔다. 이들 작품은 디지털 드로잉을 활용해 이미지를 구상하고, 이를 캔버스에 에어브러시로 그리거나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해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그의 예술적 기조가 가장 많이 담긴 '파운틴'은 양팔을 벌리고 바닥에 누워 있는 인물이 입에서 물을 뿜어내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선보이는 이 작품은 물이 가진 속성으로 구상을 시작해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고 춤을 추듯 흘러가는 모습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되는 시간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고등학생 시절 복싱 체육관에서 일하며 아마추어 경기에도 참여했던 작가는 복싱과 페인팅 사이에 정신적이고도 철학적인 차원의 유사점이 있다고 믿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했다.
이 작품은 경기에서 승리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눈물로 가득 채워진 물웅덩이에서 허우적대는 패배자의 모습처럼 보이는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
오스틴 리는 거장들의 명화를 차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기도 하는데, 작품 '조이(Joy)'는 앙리 마티스의 후기작 '댄스'를 떠올리게 한다.
핑크와 파랑, 초록의 강렬한 색감들과 함께 간결하게 처리된 춤추는 인물들의 형상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원작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를 기념해 작가가 새롭게 제작한 '플라워 힐(Flower Hill)'은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운 감정과 다가오는 새해의 시작을 맞이하는 설렘을 모두 담은 작품이다.
3개의 화면으로 이뤄진 영상에는 눈, 코, 입이 있는 꽃들이 언덕 위를 가득 채운다. 마치 인간과 같은 인상을 주는 꽃들은 수줍은 모습으로 익살스럽게 춤을 추며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블루 릴렉스(Blue relllaaaax)'는 두 손을 머리에 얹은 채 양 다리를 쭉 펴고 편안하게 앉아있는 거대한 푸른 조각이다. 오스틴 리는 컴퓨터 화면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파란색을 사용해 작품 전체에 도포하고, 눈과 입의 형태는 간결한 선으로 표현했다.
활짝 웃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닌 이 작품은 전시장 첫 공간에서 마주했던 다른 조각들처럼 가상 세계 속 인물이 현실에 등장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밖에 '미스터 오스틴(Mr. Austin)'은 형형색색의 무지개 앞에서 한 인물이 두 팔을 활짝 펴고 환하게 웃고 있다.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은 울퉁불퉁한 몸의 표현과 간결한 선으로 그려진 얼굴 윤곽선은 마치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낙서를 연상시킨다.
'미스터 오스틴'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작가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전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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