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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받는 여성의 상징 노르마…韓 소프라노가 맡아 더욱 의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02 18:42

수정 2023.10.02 18:42

오페라 '노르마' 연출맡은 알렉스 오예
개관 30돌 예술의전당서 26~29일 공연
박찬욱·황정민 언급하며 "韓영화 빅팬"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오페라 '노르마' 연출을 맡은 스페인 출신의 천재 연출가 알렉스 오예 예술의전당 제공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오페라 '노르마' 연출을 맡은 스페인 출신의 천재 연출가 알렉스 오예 예술의전당 제공

예술의전당이 오는 26~29일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제작 '노르마'를 공연한다.
예술의전당이 오는 26~29일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제작 '노르마'를 공연한다.

"200년 전 만들어진 오페라를 지금 보면 우스꽝스럽죠. 현실에 맞게 각색이 필요합니다."

예술의전당이 오는 26~29일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제작 '노르마'를 공연한다. 2016년 로열오페라하우스 시즌 개막작으로 초연됐던 이 작품은 압도적인 무대와 파격적인 연출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 공연을 앞두고 처음 내한한 스페인 연출가 알렉스 오예(63)는 오페라 비전공자다. "전통적인 오페라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힌 그는 "내 무대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어 리스크도 있다"도 말했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음악과 춤, 연기 그리고 특수효과도 많이 사용합니다. 무엇보다 관객이 무대에 공감하고 참여한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죠."

인형극을 전공한 그는 프랑코 독재정권(1936~1975년) 후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거셌던 1970~80년대 획기적 연출로 유명했던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예술감독 중 한명으로 활약했다. 폐공장, 폐가, 거리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하며 관객과 호흡하는 법을 체득했고,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날 '올드보이' 박찬욱과 배우 황정민을 언급하며 "한국영화 빅팬"이라며 팬심도 드러냈다.

■"아직도 노르마처럼 억압받는 여성 많아"

소프라노의 고난도 가창력이 요구되는 '노르마'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벨리니의 손꼽히는 수작이다. 이탈리아 지폐에 새겨진 유일한 오페라로 역사적 의미도 있다. 사랑을 위해 조국을 버린 노르마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갈리아 지방의 여사제 노르마는 점령군 수장과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지만, 남자의 배신으로 삼각관계에 빠지고 시기와 질투, 복수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성 모독의 여론 재판에 내몰린다.

오예는 "아직도 노르마처럼 사회·문화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은 많다"며 "노르마는 권력을 가진 여성이면서 누군가의 연인이자 엄마였다.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노르마를 화형까지 몰고 간 것은 사회의 광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노르마'의 테마로 증오, 광기, 희생, 종교 등을 꼽았다. "모든 종교를 존경하나, 종교가 도가 지나치면? 종교가 권력을 잡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집중해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2016년 초연 당시 그로테스크하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오예는 "그렇게 평가한 사람은 카톨릭 문화를 잘 몰라서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내 작품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프랑코 독재치하가 끝날 무렵 나고 자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참고로 스페인 국교는 카톨릭이고, 프랑코 역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아이들이 원뿔 모양 마스크를 쓰고 나오는데, 이는 사순절의 흔한 풍경입니다. 사람들이 채찍으로 자신을 때리며 회개하는 퍼포먼스도 펼치죠." 3500개의 십자가를 공간 연출에 활용한 것과 관련해선 "리투아니아의 성지, 십자가 언덕 이미지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프랑코의 흑백 사진과 고야의 그림, 아이를 안고 있는 앵글로색슨교 여성 사제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현실에 있는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의상 및 무대디자인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성악가 여지원이 연기해 더 의미"

로베르토 아바도가 지휘봉을 잡는 이번 공연에서 시그니처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를 부를 주역은 소프라노 여지원과 이탈리아 대표 성악가 중 한 명인 데시레 랑카토레다. 유럽서 활동하는 여지원이 국내에서 노르마를 연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예는 "한국인 소프라노가 노르마 역을 맡아서 더 의미가 있다"며 "연기도 노래도 잘하기 때문에 여지원의 노르마를 보면 감명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지원은 앞서 "사랑과 배신 등 감정 변화부터 높은 음역대의 어려운 기법에 우아함까지 '노르마'는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무대"라며 "'정결한 여신이여'뿐 아니라 정말 주옥같은 아리아와 장면들이 많다. 특히 피날레는 노르마와 더불어 합창, 테너의 슬픈 멜로디가 합쳐져 벨리니 음악의 정수를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벨칸토 오페라의 극치로 평가받는 '노르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1923~1977)와 인연이 깊다. 1831년 초연된 이 오페라는 1948년 칼라스가 '노르마'의 주역이 되면서 다시금 주목받았다.
1958년 칼라스가 공연 전 목 상태가 좋지 않아 출연 취소를 간청했는데 '누구도 칼라스를 대신할 수 없다'며 공연을 강행했다 중단사태를 맞았던 공연 역시 '노르마'였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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