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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자제'의 가드레일이 민주주의 지킨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04 18:56

수정 2023.10.04 19:10

정치인들 쉽게 국민팔이
합법성 위장한 권리남용
'자제의 민주주의' 펼칠때
[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자제'의 가드레일이 민주주의 지킨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은 전쟁이나 혁명이 아니고 정치제도의 합법성 내부에 있다. 하버드대학 정치학교수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2016년 미국 대선의 사례를 통해 민주주의 종주국 미국도 이 가설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이 사익을 위해 타협하고, 소셜미디어가 일으킨 바람에 언론이 공조하고, 국민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방조할 때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인 자유와 평등, 시민적 권리와 의무는 매우 허무하게 훼손된다.

민주주의가 현존하는 가장 이상적 정치제도인 것은 맞다. 그러나 무결점 정치제도는 결코 아닌 것이 자명하다. 특히 정치권과 국민이 극단적으로 양분화되어 힘을 겨루고, 분노와 복수가 만연하는 정치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너무나 쉽게 상처받고 무장해제된다. 미국도,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너무나 쉽게 국민을 호명한다.
국회 회의장과 청문회장에서 정치인들은 국민이 지금 보고 있다고, 국민의 생각은 이렇다고, 국민을 대표해 질문을 한다고 너무나 단언적이고 편의적으로 국민팔이를 한다. 잘 들여다보면 각 정당과 정치인의 국민은 같은 국민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만 국민이고, 상대방을 지지하는 국민은 국민이 아니다. 제22대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에 분열적 국민팔이의 정치적 수사 공세는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지난 대선 직전, 특정 언론이 시작하고 다른 언론이 합세한 가짜뉴스 공작이 최근에야 확인됐다. 언젠가 어디선가 경험했던 데자뷔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미국과 우리 정치 역사에서 이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치공작은 이미 우리 정치문화 속에 화학적으로 잘 녹아들어가 있어 물리적 핀셋 수술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선거 며칠 전에 상대가 대비할 수 없도록 공격하는 기술과 기교로 여론을 만들고 이끌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소위 스핀닥터의 활보는 매우 우려할 일이다. 이러한 여론 사기와 조작은 헌법적 가치인 국민의 선거권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므로 매우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전통 언론이 유튜브의 이야기 방식을 배우고 있다는 것도 미국과 우리의 공통 경험이다. 자신만의 고객, 즉 자신만의 국민이 원하는 사실을 임의로 만들어 유포하는, 검열되지 않는 정보권력 유튜브의 이야기 전달방식에 언론이 이미 오염되어 있음은 매우 유감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미래 민주주의를 위해 지금 꼭 필요한 것은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forbearance)'라고 역설한다.

민주주의 제도 내부에는 합법성으로 위장한 권리남용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이를 자제하도록 규정하고 유도하는 정치윤리적 가드레일 없이 정치, 언론, 소셜미디어에 대한 건전한 견제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법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다. 연역적 논리체계인 법치로 정치인과 언론의 권리남용과 일탈에 일일이 대처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합법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총선 승리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것은 정치권의 오판이고 오만이다. 정부가 민주주의의 미래와 시민적 자유를 진정 걱정한다면 정치와 언론이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하는 자제의 가드레일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합의에 도전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의 덕목은 '자제의 민주주의'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약력 △62세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학사·석사 △영국 리즈대 커뮤니케이션 및 사회학 박사 △고려대 미디어대학원 원장 △고려대 미래전략실장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현) △국가교육위원회 전문위원(현)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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