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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모주, ‘예고편 성공=흥행’ 아니다

김찬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08 18:49

수정 2023.10.08 18:49

[기자수첩] 공모주, ‘예고편 성공=흥행’ 아니다
최근 공모주의 흥행 신화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사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믿음이 만연해 있다.

수치에서도 나타난다. 상장을 앞둔 기업들이 일반청약에서 평균 116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고, 조(兆) 단위 증거금도 거뜬히 몰린다.

이달 초 상장한 두산로보틱스는 일반 청약증거금으로 33조원을 모으며 역대 공모주 청약증거금 9위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 일반청약을 진행한 퓨릿은 8조원대에 가까운 증거금을 모았고, 한싹은 3조원대, 밀리의서재는 2조원대를 각각 기록했다.


조 단위 금액이 너무 쉽게 모여서일까. '흥행'이라는 수식어도 쏟아진다. 뉴스만 보더라도 공모주에 흥행이라는 단어가 따라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최근 공모주 투자는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해 투자하기보다는 단타를 통해 수익을 내려는 '묻지마 투자' 수요가 몰렸다는 점이 눈에 띈다.

실제로 두산로보틱스 청약을 앞두고 주식 커뮤니티에는 상장 첫날 팔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는 게시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청약이 시작된 당일 예탁증권담보융자 잔액은 하루 만에 1조원 가까이 급증해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대어급 공모주 상장을 앞두고 증권사에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공모주 시장이 단타로 얼룩지면서 흥행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조 단위 금액을 쏟아넣었지만 신규 상장사와 개인투자자의 관계는 대부분 상장 첫날에 끝난다. 투자자들은 상장하는 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한 관심보다는 단타를 통해 수익을 내는 데 몰두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비상장사들도 '상장 후 공모자금만 받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다. 성장성을 가진 기업이 투자자와 함께 크고, 주주환원을 통해 이익을 나누며 시장 전반에 활기가 도는 선순환의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상장 첫날 주주 대부분이 뒤바뀌는 기업에 '흥행 성공'이라는 포장지를 붙이는 것은 다소 어색하다.

유명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첫회 시청률은 '0.9%'에 불과했다. 이후 시청률이 우상향해 17.5%로 마무리하면서 이 드라마는 명실상부한 '국민드라마'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공모주도 마찬가지다. 상장 전에 몰리는 증거금으로 '흥행'을 단정하긴 이르다.
상장 후 꾸준히 이익을 내며 주주와 함께 성장한 기업에 흥행했다는 수식어를 붙여도 늦지 않다.

hippo@fnnews.com 김찬미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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