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재생에너지 시대 뉴노멀, 봄가을 출력제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12 18:04

수정 2023.10.12 18:04

[특별기고] 재생에너지 시대 뉴노멀, 봄가을 출력제어
오래전부터 여름과 겨울 전력수요의 피크가 예상되는 기간이 되면 전력산업계는 정부, 관계기관, 학계 너나없이 긴장하며 대비에 총력을 기울이곤 했다. 모든 설비계획과 운영계획,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도 모두 이 시기에 맞춰서 동작하곤 했다. 일년 중 가장 전력을 많이 쓰는 날을 무사히 버티면 나머지 날들을 수월히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수년 전 학회에서 처음 경고가 터져 나왔다.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봄가을철이 오히려 더 위험한 시기일 것이라고. 냉난방수요가 급감하고 연휴나 명절이 겹쳐 전국적으로 전력수요가 최저 수준일 때 화창한 날씨로 인해 태양광발전원의 출력이 최대가 되면 발전량을 빠르게 감소시키기 어려운 원자력발전과 태양광발전만으로 전력망을 지탱하는 시점이 온다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켜야만 하는 전력계통의 특성상 수요에 공급을 맞추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 상태에서 예기치 못한 고장이 발생하면 전력망 전체에 정전의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재생에너지 보급 초기였기 때문에 설마 그 정도까지겠어 하는 반응과 심각하긴 한데 시간이 아직 좀 남았다고 생각하는 반응이 혼재되어 있었다. 전력계통 운영은 피크기간에 제일 위험하다는 우리의 뿌리 깊은 선입견도 한몫했다.

코로나 기간과 연휴가 겹친 2020년 봄, 모든 경제시스템이 멈추었고 전력수요는 그 당시 기준 역대 최저수치인 41GW를 기록했다. 몇 년 새 늘어난 태양광발전원으로 인해 수년 전 학계의 경고는 스릴러 영화의 예고편처럼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위한 정책적·기술적 수단과 매뉴얼이 부재했기에, 그나마 제어가 가능했던 원자력발전원들이 2020년 5월 2일부터 이튿날까지 긴급 감발운전을 시작해 줄어든 전력수요에 힘겹게 대응할 수 있었다. 이 예고편을 본 이후에도 수십년간 피크 기간을 중심으로 수립되었던 정책의 거버넌스가 빠르게 바뀌긴 어려웠다. 전력산업계와 정책당국 일각에서 소수의 선구자들은 연구하고 하나씩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아직 그래도 시간이 꽤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본게임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시작되었다. 올해 9월 초 열렸던 정부 회의에 참석했던 필자는 책상 앞에 놓인 최저수요 전망치를 보고 흠칫 놀랐다. 긴 연휴와 수요를 차감하는 비계량 태양광발전량 증가로 인해 연휴 중 최악의 경우 32GW까지 전력수요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코로나 기간처럼 원자력발전 출력감발뿐 아니라 민간 소유의 태양광발전원에 대해서도 대규모 출력제어가 불가피하다. 다행히 연휴 중 정부와 관계당국의 체계적 대응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운전원들의 순발력이나 재량이 아니라 연초부터 체계적 대응을 바탕으로 한 정책이 정상적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문제를 명확히 인지했고, 거버넌스가 동작하기 시작했고,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다. 둔화되는 경제성장과 소비자의 자가용태양광 설치로 인해 봄가을철의 낮은 전력수요는 이제 뉴노멀이 됐다.
뉴노멀을 피할 수 없다면 적응하고 진화하자. 이번 봄가을철 출력제어 대책에 포함된 수단들보다 효과적 정책수단이 없는지, 새로운 신산업을 꽃피울 수는 없을지 각자의 셈을 시작할 때다.

김승완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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