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픈 더 도어'와 '독친' 개봉
[파이낸셜뉴스] 영화는 종종 시대와 현실을 반영한다.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패륜아와 인터넷 자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잇따라 개봉한다. 19일 영화업계에 따르면, 장항준 감독이 연출하고 장감독과 30년째 친구이자 협력자로 호흡 중인 방송인 송은이가 제작한 영화 ‘오픈 더 도어’(10월 25일)와 한류배우 장서희가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독친’(11월 1일)이 그것이다. 독친은 자식에게 독이 되는 부모, 즉 지나친 간섭으로 자식을 망치는 부모를 뜻한다.
■그 선을 넘고, 그 문을 여니 파멸이 기다렸다...‘오픈 더 도어’
“누나 동거남 살해 후 ‘100년형’…美 한인 장기수 석방될까” 지난 9월 미주지역 한국 신문 등을 통해 한 한인 장기수에 대한 뉴스가 보도됐다. 만 19살에 누나의 동거남을 총으로 쏴 죽인 혐의로 미국에서 징역 100년형을 선고받고 30년째 복역 중인 모범수 앤드루 서(49)씨. 그의 기구한 인생은 뉴저지 한인 세탁소 살인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서씨의 가족은 1976년 미국 시카고로 이민했다. 군 장교 출신 아버지와 약사 출신 어머니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떠났을 터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민 후 9년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2년 뒤 어머니도 세탁소를 운영하다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다섯 살 위인 누나와 단둘이 남은 서씨는 다행히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할만큼 우수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대학 2학년 때 누나의 지시로 살인을 저질렀다. “동거남이 (자신들의) 엄마를 죽이고, 상속 받은 재산을 도박 빚으로 탕진하며 나를 학대한다”는 누나의 말에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누나를 보호하기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누나의 거짓말이었고, 누나야 말로 돈을 노리고 모친의 살인을 모의한 패륜아였다.
‘오픈 더 도어’는 우연히 이 사건을 접한 장항준 감독이 단편을 만들면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그러다 콘텐츠랩비보의 송은이 대표가 관심을 보이고, 한때 단란했던 한 가족이 어떻게 지금의 비극에 이르렀는지를 추가하면서 71분 러닝타임의 장편으로 완성됐다.
5개의 챕터로 구성된 영화는 시간 역순으로 진행된다. 한밤중 뉴저지의 한적한 마을. 치훈(서영주 분)이 매형 문석(이순원)을 찾아 김치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다가 엄마의 강도사건을 언급한다. 그러다 갑자기 "왜 불쌍하고 착한 우리 누나를 때렸느냐"고 추궁하고, 이에 매형은 "네 누나가 뭐가 불쌍하냐? 엄마 죽여 달라고 한 게 네 누나야!"라고 폭로하면서 분위기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다.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하나 인물들의 관계 등 세세한 관계나 사건은 실화와 동일하진 않다. 사건 자체도 세세하게 다루지 않고, 인물들간의 대화를 통해 유추하게 만든다.
10억원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치훈과 누나 윤주(김수진), 윤주와 남편 문석의 대화를 통해 비극이 발생하기 직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들려준다. 주로 인물들의 대화나 살인이 벌어진 그날 밤의 상황을 통해 긴장감을 자아낸다.
명절은 자주 가족 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추석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탓일까? 영화를 보다보면 집집마다 바람 잘 날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족사뿐만 아니라 결국은 극단으로 치달아 사회면을 장식하는 비극적 사건까지 떠오르면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무리 사람이 궁지에 내몰려도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다른 해법을 찾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한때 단란했던 그 가족이 지금의 비극에 이르렀을까?' 감독이 이러한 마음으로 연출한 것으로 보이는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장항준 감독은 언론시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 왜 이런 사건에 이르게 됐는지, 그들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챕터를 하나둘씩 쓰다보니까 장편이 됐다”고 설명했다.
독립영화 같다는 지적에는 “예능에 자주 출연하다보니 저를 예능 취향으로 생각하는데, 평소 독립영화를 즐겨본다”며 “독립영화가 가진 순수한 도전정신, 이야기의 본질에 충실한 작업 방식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영화에게 엄혹한 시간이 돌아왔는데, 이럴 때일수록 다양성이 중요하고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년 후 한국영화계가 다시 활황이 되어도 남아있는 영화계 인력이 없을 것이다. 흔들리지 말고 다양한 이야기를 구현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연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랑인줄 알았는데, 독이 됐다...‘독친’
자살은 10~20대 국내 사망 원인 1위다. 특히 청소년 자살률은 2017년 7.7명에서 2020년 11.1명으로 44% 늘었다.
2022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성인의 자살생각률과 계획률은 2020년 기준 각각 5.4%, 1.6%인 반면 청소년의 경우 자살생각률 14.0%, 자살계획률 4.4%로 훨등히 높게 나타났다.
'독친'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지나치게 간섭하는 부모와 인터넷을 통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여 동반자살을 하는 사회문제를 소재로 한다.
학교에 등교한줄 알았던 여고생 유리(강안나)의 주검을 마주한 워킹맘 엄마 혜영(장서희)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인터넷 자살을 했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다. 엄마가 ‘내 딸이 자살 할리 없다’면서 타살을 주장한 가운데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다. 아이들을 나름 진심으로 대해온 담임교사 기범(윤준원)과 유리와 한때 친하게 지냈던 아이돌 연습생 예나(최소윤)가 유리의 자살에 어떤 영향을 끼친 걸까? 사람들에게 “우아하고 다정한 엄마”로 비쳤던 유리의 엄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장서희, 강안나, 최소윤, 윤준원, 오태경, 조형균이 출연한 ‘독친’은 재미와 주제의식을 두루 갖춘 영화다. 인터넷 자살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를 중심으로 한 수사물의 형식을 띄고 있으면서 ‘조건으로 급을 매기는’ 결혼정보회사 매니저인 워킹맘과 형보다 출세하지 못했다고 부모에게 대놓고 무시당하는 교사 그리고 모범생인줄 알았는데 우울증을 앓고 있던 여고생의 이야기가 맞물리며 이 영화의 주제를 흥미롭게 전달한다.
극적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층적이면서도 영리하게 전개하는 김수인 신인감독의 연출력과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유리의 기괴한 모습은 보는 이를 오싹하게 만들고, 친구의 죽음 이후 주위로부터 오해를 받던 예나가 춤 연습을 하던 중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하는 장면에선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어른들의 오만과 편견을 지적하는 예나의 대사는 매섭다.
김수인 감독은 “마땅히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인 부모가 자식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상황이 굉장히 흥미로워서 이야기를 풀어내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며 "너무 교훈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일본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에 이어 바르셀로나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됐다.
김 감독은 “(일본에서는) 영화 제목 자체에 대한 친밀도가 완전히 달랐다. 한국에서는 영화를 준비할 때 독친을 독침으로 잘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독친이라는 개념이 이미 널리 퍼져 있었고, 10대, 20대 청소년, 청년들에게 굉장히 공감을 많이 받고 있는 개념이었다”라고 전했다.
배우 장서희는 “일본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갈등과 고민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강안나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영화를 보고 느끼는 게 똑같은 게 신기했다”라고 당시의 경험을 전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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