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사교육을 유발하는 씨앗 [기자수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22 14:03

수정 2023.10.22 14:03

사교육을 유발하는 씨앗 [기자수첩]

[파이낸셜뉴스]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여느 때보다 강해보였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수능에 대해 언급하고 학원가 부조리를 지적한 이후부터다. 화들짝 놀란 교육부는 즉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마련했다. 학부모 불안감을 조장하는 '킬러문항'과 '사교육 카르텔'을 없애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한 것은 지난 2014년 이후 9년 만이었다.


학원가는 타깃이 됐다. 입시업계가 수능 출제위원들과 카르텔을 형성하고 킬러문항을 이용해 돈을 쓸어 담는다는 이유에서다. 대대적으로 입시업계를 털자 보이지 않던 먼지 뭉치들이 나왔다. 수능 출제 교사에게 많게는 5억 원가량을 건네고 문항을 사들인 사례도 드러났다. 비싼 값에 문항을 구매한 입시업체는 학부모들을 상대로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교육 카르텔 근절은 사교육비를 경감하는 데 일조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름난 입시업체들은 모두 경찰 수사 의뢰 대상에 올랐다.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학원가 분위기는 한동안 얼어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에도 입시업체들이 조용히 웃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2028 대입 개편 시안이 발표된 이후부터다.

시안에 따르면 고교 내신은 현행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개편된다. 수능 선택과목이 폐지되면서 수험생은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모두 치러야 한다. 아직은 하나의 안으로 제시됐을 뿐이지만 '미적분Ⅱ'와 '기하'로 구성된 '심화수학'을 신설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5등급제로 내신 변별력이 약화되면 정시의 중요성은 커진다. 자연스럽게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와 과학을 모두 잡기 위한 학생·학부모 투자도 늘 것이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고1 과정에 속해 있지만 수능은 난도를 감안해 출제하기 때문이다. 상위권 대학들이 정시모집 전형에서 심화수학을 필수과목으로 반영하면서 수학 사교육이 증가하는 상황도 예측해볼 수 있다.

최근 교육당국은 2028 대입 개편 시안과 관련한 사교육 업체의 거짓·과대 광고를 단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사교육 업체가 대입 개편 시안을 이용해 근거 없는 주장을 일삼는 것을 막겠다는 설명이다. 기시감이 드는 으름장에 어리둥절한 건 학원가다. 이미 발표된 시안에 대해 나름의 분석도 내놓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부 입맛에 맞는 해석만 내놓으라는 압박으로도 읽혀질 수 있다.

수능에 킬러문항을 출제한 건 정부였다. 이러한 대입 개편 시안을 내놓은 것도 정부였다.
그렇다면 사교육의 씨앗을 뿌린 건 누구인가. 콩 심은데 콩이 난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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