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증권 발행 규모 증가폭 2배 수준
"기조적 부족자금 조달 행태" 비판
"법적 근거 내 활용" 반박도
"기조적 부족자금 조달 행태" 비판
"법적 근거 내 활용" 반박도
[파이낸셜뉴스] 정부의 세수 결손에 대한 주요 대응책인 한국은행으로부터의 '일시차입금' 규모가 올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년간의 평균치 대비로는 3.3배가 늘었고 이자만 1500억원에 이른다. 또다른 유동성 공급 방식인 재정증권 규모의 증가폭에 비해서도 2배 가량 높은 수치로 정부의 '마이너스 통장' 운용이 과도하게 커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공표자료를 집계한 결과 올해 9월까지 한은에서 빌린 정부의 일시차입 금액이 누적 113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한은 단기차입은 국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유령 회계'다. 건전 재정을 강조하는 정부로서는 회계상 적자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부족한 유동성을 메울 수 있는 방책인 셈이다. 정부는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초단기로 한은의 일시 차입을 운용해왔다. 정부는 지난해 5월에도 코로나 이후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지급을 위해 약 5조원의 일시차입을 단행한 바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역시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미미하다는 생각"이라며 "다만 세입·세출에 현금 흐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법·제도 상에 허용된 범위 내에서 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설명했다.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재정증권과 달리 '갚기만 하면' 장부 상 문제가 없는 일시차입은 정부로서 고마운 수단이기도 하다. 재정증권의 경우 발행된 국채를 시장에서 받아내야 하는 만큼 월 약 4~5조원 수준이 한계라는 점도 유연한 자금 투입을 방해하는 요소다. 국채에 대해 다수 금융기관이 제각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등 시일이 소요되는 반면 일시차입은 빠르게 집행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최근 규모의 증가폭이 심상치 않다. 올해를 제외한 지난 9 년간 정부의 한국은행에 대한 일시차입금액은 연평균 34조9000억원 수준이었다. 올해는 모르는 새 단 9개월만에 연 평균 수치의 3.3배를 쓰고 갚아온 셈이다. 정부가 지불해온 이자비용 역시 1500억원이 쌓였다. 지난 9년간 연평균 이자비용은 165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한은이 정부에 빌려주는 대출금 재원은 결국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이다. 국채를 찍어내는 대신 돈을 찍어 정부에 빌려주는 식이다. 본원적으로 시중의 통화량이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채권을 통해 기존 통화량이 단순히 이동하는 것에 비해 물가를 자극할 우려도 높다.
동기간 정부의 재정증권 발행액 44조5000억원이다. 일시차입금 규모는 이보다 2.5배 높은 수준이다. 국가 부채를 중장기적으로 늘리는 적자국채를 모면하기 위해 '빌리고 갚기'를 되풀이한 것이 오히려 우려를 확산시키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한은 일시차입이 기조적 부족자금 조달 수단에 준하는 제도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진선미 의원은 “ 경기 침체와 정책실패로 인한 재정의 부족을 메우기 위한 정부의 국고 부족 자금 조달이 상습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며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일시차입은 통화량 변동과 물가·이자·금융안정에 직결되는 사안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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