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 의사를 늘린다고 무슨 문제가 생길까?

뉴스1

입력 2023.10.24 05:00

수정 2023.10.24 17:43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0.19/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0.19/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병의원 미용성형 의사 수 추정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병의원 미용성형 의사 수 추정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의사당 입원환자 증가에 따른 사망률 변화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의사당 입원환자 증가에 따른 사망률 변화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의사 수와 의료비 지출 간 상관관계
의사 수와 의료비 지출 간 상관관계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편집자주]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필수 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의사 수 부족이 원인으로 거론되나 의료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 배출을 늘리는 것과 함께 '나쁜 의료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논쟁적 존재'가 되는 김 교수가 앞으로 '김윤의 메디컬인사이드'를 통해 의료계 문제를 진단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서울=뉴스1) = 대통령까지 나서서 의사가 부족해서 필수의료, 지역의료가 붕괴되고 있다고 하니,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 대신 늘려봐야 소용없다거나 늘리면 오히려 나빠진다는 주장을 더 자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의대 정원 늘려봐야 미용·성형하는 의사만 늘고 필수 의료를 전공하는 의사는 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나라는 환자 수요에 맞춰 전문과목별 전공의 정원을 책정한다. 내과는 환자가 많으니 전공의 정원이 600명이 넘지만,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70명 수준으로 전체 전공의 수의 4%에 불과하다(2023년 전기 기준). 아무리 피부과와 성형외과가 인기 과목이어도 배출되는 전문의 수는 140여명을 넘지 못한다. 전체 의사 중 미용·성형 진료를 주로 하는 동네 병의원에 근무하는 피부과 성형외과 의사도 전체 의사의 3%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다른 과목 전문의나 일반의가 미용·성형 진료를 하기도 한다. 미용·성형 진료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라서 그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비급여 진료비가 많아 건강보험 진료비가 적은 곳을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를 주로 하는 의원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일반의와 자기 전문과목을 진료과목으로 표시하지 않은 의원 중 해당 진료과목 건강보험 진료비의 20% 미만 또는 30% 미만인 의원은 각각 5.9%, 9.2%에 불과했다. 이들 모두가 미용·성형을 하는 의원이라고 가정해도 미용·성형 의사는 전체 의사의 10%를 크게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사를 늘리면 우리나라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성적 상위 1% 학생들이 의대에 입학하는데 의대 정원을 늘려 상위 2~3% 학생이 된다고 의료 질이 떨어질 리 없다. 의대 교육이나 전공의 교육이 지금보다 나빠질 가능성도 낮다. 의대 증원 대상으로 거론되는 국립 의과대학과 미니 의과대학 모두 큰 규모의 대학병원과 분원을 운영하고 있어 많은 수의 임상 교수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해부학, 생화학 같은 기초의학 분야 교육의 질이 걱정된다면 의과대학 평가 기준을 적정 수준으로 높이면 될 일이다. 현재 모든 의과대학은 법에 따라 '의과대학 인증평가원'에서 교수 수를 포함한 의학교육의 질을 평가받고 있다.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신입생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학교 문을 닫아야 한다. 전공의 수련은 의대 증원을 계기로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다. 정부가 필수진료과의 수련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수련을 담당하는 전문의가 전공의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면 전공의 수련의 질은 올라간다.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의 질은 좋아진다. 병원에서 의사 1명이 담당하는 입원환자 수가 줄어들수록 환자 사망률은 낮아진다. 영국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의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5명 이하에서 9명 이상으로 늘어나면 환자 사망률이 9.9% 증가했다. 여러 연구를 종합해서 분석하는 체계적 문헌 고찰 연구에서도 의사 1인당 환자 수가 줄어들면 대부분 사망률이 낮아졌다. 합병증이나 부작용 발생이 줄어 환자 입원 기간이 짧아지고 입원비가 줄어든다는 연구도 여럿이다. 동네의원에서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의사가 늘어나면 만성질환이 잘 관리되어 심장병, 뇌졸중 같은 중증 합병증이 줄어든다. 결국 환자의 사망률이 낮아지고 의료비도 줄어든다. 우리나라와 외국의 연구 모두 결과가 같았다.

단순히 의사가 늘면 의료비가 증가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인구당 의사 수와 의료비 지출을 비교해 보면, 이 둘 사이에 뚜렷한 상관성을 찾기 어렵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의료비는 OECD 평균을 넘어섰지만, 의사 수는 OECD 국가들이 1.4배 더 많다. 우리나라와 의료비를 비슷하게 쓰고 있는 나라 중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의사가 훨씬 더 많다. 의료비가 증가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 증가로 기계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의사가 너무 많으면 의료비가 증가할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의사가 너무 적어 의사 몸값이 치솟고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오히려 의료비가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설사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고 해도 의사가 없어 중증 응급환자가 뺑뺑이를 돌고, 소아 환자가 입원을 못 해 사망하고, 분만할 병원이 없어 몇 시간씩 구급차를 타고 가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돈을 쓰는 게 맞다. 의사협회가 우리나라 의료비가 정말 걱정이 된다면, 의사를 늘리지 말자고 할 게 아니라 낭비적 의료비 지출의 주범인 과잉 진료와 비급여 진료, 병상 과잉 공급, 실손보험 같은 문제를 해결하자고 나서는 게 맞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에 따르면 '그래 봐야 더 나빠질 거야'라는 '역효과 명제'는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무용론과 함께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변화를 막기 위해 사용해 온 아주 유서 깊은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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