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日 가계 ‘잠든 돈’ 1000조엔… 투자유도 사활 건 기시다 내각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29 18:27

수정 2023.10.29 18:55

20년간 실패해온 ‘저축에서 투자로’… 기시다의 전략은
‘묶인 현금’에 공 들이는 일본 정부
최저임금 평균 1500엔까지 인상 약속
신용카드 투자 상한액 月 5만→10만엔
日 가계 ‘잠든 돈’ 1000조엔… 투자유도 사활 건 기시다 내각 [글로벌 리포트]
교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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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 정부가 2경원에 이르는 가계 금융자산의 투자를 유도하고 외국 금융업체의 일본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자산운용특구' 창설을 추진한다. 몇십년 동안 장롱 속에 잠들었던 현금을 시장에 다시 돌게 하고, 적극적인 임금 인상을 실시해 '두꺼운 중산층'을 형성한다는 게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구상이다. 지난 20년 동안 역대 내각들도 '저축에서 투자로'라는 슬로건을 외쳤지만 번번이 실패한 가운데 기시다 내각은 일본 국민들의 현금을 시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日에 투자하세요" 영어 전용 특구 만든다

29일(현지시간) 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기시다 총리는 미국 뉴욕 경제클럽의 투자자 대상 강연에서 "해외 (업체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자산운용특구를 만들겠다"며 "영어만으로 행정 대응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개혁하고, 비즈니스·생활 환경 정비를 중점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뉴욕 경제클럽은 1907년 설립된 회원제 조직이다.
일본 총리가 이곳에서 연설한 것은 처음이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에는 자산운용센터가 운용하는 자산이 800조엔(약 7260조원)으로 3년간 1.5배로 늘었다"면서 "독자적인 비즈니스 관행과 (외국 업체의) 참여 장벽을 시정해 신규 참여 업체 지원 프로그램을 정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금융업계 지원 업무는 아웃소싱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며 "외국 자산운용업체가 진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일본은행이 지난 9월 20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일본 가계 금융자산은 지난해보다 4.6% 증가해 역대 최대치인 2115조엔(약 1경9200조원)을 기록했다. 가계 금융자산 중 절반이 넘는 1117조엔(약 1경130조원)이 현금·예금이었고, 나머지는 주식·보험금 등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 '돈맥경화'의 맥을 뚫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삼겠다는 복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는 "일본에서 투자신탁을 담당하는 운용회사 수는 약 110개로, 지난 반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며 "기시다 총리가 해외 금융회사의 참여를 유도하고 개인의 선택지를 넓혀 일본 자산운용업을 강화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日 최고원로 모여 두달간 계획 수립

이와 관련 일본 정부는 자산운용특구를 둘 지역을 추후 논의해 결정할 계획이다. 이르면 연내에 정책 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경우 관련 규제 완화와 법 개정도 검토할 방침이다.

이미 일본 정부 산하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회의'는 지난 4일 자산관리국가 실현을 위한 본격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이 조직의 수장은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이 맡았다. 스즈키 재무상은 "회의 초반 가계의 자금을 성장 투자로 연결해 그 혜택을 가계에 미치게 하겠다"며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나카소 히로시 전 일본은행 부총재와 오바 아키요시 일본투자자문협회 회장 등 일본 자본시장의 굵직한 원로 6명도 구성원으로 모였다. 이 기구는 연말까지 정책 계획을 수립해 신규 자금의 참여, 기업연금 투자 실적 공개 등 구체적인 대책을 확정할 예정이다.

회의 첫날은 대형 금융그룹 운용업체의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 등을 논의했다. 일부 구성원들은 독립 사외이사 선임 비율의 의무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음 회의에선 기업연금의 투자 실적 공개 등 오너 개혁을 논의하기로 했다. 정책 계획은 금융청 금융심의회에 마련한 태스크포스(TF)에서도 병행 논의된다.

■장롱 속 1000조엔 돌면 중산층 부활

일본 정부가 '묶인 현금'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중산층의 소득 둔화가 있다. 내각부에 따르면 일본의 중산층 비중은 2019년 현재 57%로 주요 7개국(G7) 평균 51.9%를 웃돈다.

하지만 현재 신선식품을 제외한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8월까지 17개월 연속 전년동기대비 2%를 웃도는 등 탈 디플레이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잃어버린 30년' 동안 변함이 없었던 물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30년 간 계속된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임금 증가는 둔화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소득분포 중앙값은 1994년 566만엔에서 2019년 464만엔으로 100만엔 이상 떨어졌다. 최근에는 갑작스러운 고물가로 1인당 임금이 16개월 연속 전년 같은 달을 밑돌면서 기시다 내각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쳤다.

미국과 영국은 가계 금융자산이 2022년까지 20년간 각각 3.3배, 2.3배로 늘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1.5배 성장에 그쳤다. 가처분소득에서 자산소득이 차지하는 비중도 일본은 8%로 미국과 영국의 18%대에 한참을 밑돌았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 가계 자산의 50%인 1000조엔 이상이 예금에 묶여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투자 촉진 외에도 일본 정부는 2030년대 중반까지 최저임금을 전국 평균 1500엔으로 인상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는 등 임금 인상도 서두르고 있다.

■개인투자 규제 빗장도 걷어

저축에 머무르고 있는 가계 금융자산을 투자로 끌어내기 위해 일본 정부는 개인 투자와 관련한 규제도 완화하기 시작했다.

당장 신용카드로 투자신탁(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금액 상한선을 현재 월 5만엔 수준에서 월 10만엔으로 2배 늘린다. 내년 1월 한국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격인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가 개편된 데 따른 조치다.

일본에서 펀드는 일반적으로 신용카드로는 투자할 수 없다. 매월 일정액씩 넣는 적립식 투자에 한정해 신용카드 투자가 허용되고 있으나 빚 투자를 막기 위해 금융상품거래 법상 10만엔을 상한으로 해 왔다.

그러나 증권사 대부분이 상한 규정에 저촉되지 않도록 신용카드로 인한 투자금액 상한을 자체적으로 월 5만엔까지만 설정해왔다. 이에 일본 금융청은 월 5만엔이라는 투자 제약이 내년 1월 새로운 NISA도입 효과를 방해하지 않도록 내각부령을 개정키로 했다. '10만엔 한도'라는 요건을 '1회당 적립액은 월 10만엔 한도'로 변경해 상한액인 10만엔까지 투자가 온전히 이뤄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포인트 환원은 알뜰한 일본인들에게 민감한 요소다. 라쿠텐증권의 경우 적립액의 최대 1%를 포인트로 환원해주고 있는데 적립식 펀드 투자의 신용카드 이용 비율이 50%에 이른다.

다만 일본에서 투자를 활성하자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주제가 아니었다. '저축에서 투자로'라는 슬로건이 처음 등장한 지도 20년이 넘었지만 그때마다 공염불에 그쳤다. 이 때문에 가계의 자산소득을 2배로 늘리고 경기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기시다 내각의 포부가 계획대로 성공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적잖다.

■벼랑 끝 기시다, 분위기 반전 '안간힘'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기시다 내각으로선 정국을 환기시키고, 인기를 끌만한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산운용특구 등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이달 주요 언론 조사에서 잇따라 30%대 초반을 기록, 출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14∼15일 실시한 조사에선 지지율이 25%까지 추락했다. 보통 일본 총리는 여당 지지율과 합쳐 50% 미만일 때 자진 사퇴하는 관례를 보였다. 현재 기시다와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경우는 대체로 50%를 겨우 유지하는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급기야 기시다 내각은 방위비와 저출산 대책을 근거로 줄곧 외쳤던 증세 기조를 엎고, 오히려 감세를 논의하고 있다.

닛케이는 감세와 관련해 "소득세 등을 연간 4만엔(약 36만원) 줄여주고, 저소득층 비과세 대상자에게는 연간 7만엔(액 63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주 TV도쿄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2년치의 소득세 등 세수 증가분을 알기 쉬운 형태로 환원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고물가를 웃도는 임금 인상을 실현하고 싶다. (이번 조치는 고물가에 대응해) 확실히 지원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언급했다.


이외 일본 정부는 감세 외에 전기·가스 요금 보조금 지급 시기를 내년 4월까지 연장하고, 고속도로 요금 할인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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