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진흥원 연구 보고서…피해자 8명 인터뷰
가해자 낮은 형량에 무력감 느껴
"생존자 비난 멈추는 문화 조성 시급"
가해자 낮은 형량에 무력감 느껴
"생존자 비난 멈추는 문화 조성 시급"
[파이낸셜뉴스]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최초 질적연구를 담은 '디지털 성범죄 유포 및 유포불안 피해 경험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31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특성을 반영한 피해 단계별 회복적 요소 분석을 통해 실질적 피해자 지원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과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료 방법, 사회적 인식개선 방안 등이 담겼다. 보고서는 진흥원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에 참여한 피해자들은 지속·반복적인 유포 피해를 경험하면서 '실존적 생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답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영속적 특징을 갖고 있어 성범죄를 반복적으로 겪는 것과 유사해 지속적인 학대 피해와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인식한 시점부터 지속적인 유포가 이어져 협박과 신상정보 노출로 인한 제약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유포 영상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일상의 기본적인 신체 활동조차 할 수 없어 급격한 체중감소를 경험하고 잠을 잘 수 없는 신체적 고통까지 경험했다고 호소했다.
참여자들은 비난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하기도 했다고 답했다. 일부 참여자는 성형 수술과 개명으로 사건과 관련된 모습을 지워버리려 했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성범죄 속성상 불법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국내법 내 처벌 근거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유포물 삭제의 어려움은 또 다른 벽이었다. 반복적인 유포물 삭제 요청에도 사실상 도메인만 삭제될 뿐 유포물 자체는 삭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 밖에도 참여자들은 불법 사이트에 대한 허용적 문화, 피해 특성이 반영되지 못한 심리지원, 트라우마 반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수사방식 등을 문제로 꼽았다. 한 참여자는 "경찰서에 갔을 때 남자 형사가 있는 상황에서 그 영상을 같이 켜고 당시 (유포물의) 상황을 설명하라고 말씀하셔서 분통이 터지고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피해자를 위한 환경 조성과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특화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우선 안전한 온라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소셜미디어 플랫폼, 웹사이트의 적극적 기여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 대응과 환경 조성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대한 인식개선과 생존자 비난을 멈추는 문화 조성 등이 시급하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특화된 개입과 제도 개선과 관련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 특성을 반영한 심리지원 개입, 법률과 제도 개선, 수사방식 개선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보라 여성인권진흥원장은 "이번 연구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을 위한 관련 기관들이 디지털 성범죄가 가지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피해지원에 특화된 정책과 지원전략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