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으로 신체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건강검진이라고 한다면,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수준 및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정기검사라고 한다. 원자력발전소의 정기검사도 1980년대 초에 도입됐다. 당시 이 제도 자체는 일본의 방법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난 40년간 원자력발전소 자체의 안전성도 많이 개선됐고 운영기술능력도 크게 향상됐지만, 검사방법과 체계는 검사대상 항목이 확대됐다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정기검사 대상 항목은 원자로 본체를 포함하는 16개의 시설에 총 355개의 점검 분야로 구성돼 있다. 발전용원자로를 운영하려면 검사에 합격해야 하는데, 355개의 점검 분야 중 하나라도 합격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원자로를 가동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355개의 항목중에는 비안전 계통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어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원전의 안전운전에는 거의 영향이 없는 항목들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
특히, 모든 점검 분야에 동일한 가중치를 두고 합격 여부를 판정하기 때문에 안전에 더 중요한가 덜 중요한가의 관점보다는 합격/불합격 여부에 초점이 맞춰있다. 이렇게 상대적 '중요도'보다는 기준의 '만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결정론적 방법'에 근거한 검사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검사방법이 과연 효과적이며 효율적인가?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미국에서도 원자력발전소 가동 초기인 1980년대까지는 결정론적 방법에 따라 검사하고 규제결정을 내렸는데, 이용률은 물론, 안전성도 높지 않았다. 미국의 원자력규제기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새로운 방법을 개발, 적용했다. 어떤 설비가 발전소에 미칠 위험도, 즉 '리스크'를 평가해 이를 활용하는 것으로, 리스크평가를 토대로 리스크가 높은 분야에 더 집중하고, 리스크가 낮은 분야는 사업자가 주도적으로 이행하도록 권장했다. 미국에서는 리스크정보를 적극 활용하며 규제자와 사업자 모두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발전소의 안전성뿐 아니라 이용률도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우리가 벤치마킹한 일본조차도 2020년부터는 미국과 거의 유사한 검사체계로 완전히 바꿨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시 과거 규제감독 체계가 사고대응에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IAEA 점검결과를 적극 수용한 것으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자력산업 자체도 안전성과 경제성을 모두 추구해야 하는 산업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원자력 안전규제도 더 효과적, 효율적인 선진기법을 적극 도입해 개선해야만 한다. 원자력발전소에서도 리스크정보를 활용해 더 안전하면서도 이용률을 높일 수 있는 현대화된 검사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원자력발전 기술과 환경이 달라지고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원전수출 강국이 되었는데 검사제도는 여전히 1980년대에 머물러 있어서야 되겠는가. 더 늦지 않게 규제도 달라져야 한다.
박윤원 전 원자력안전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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