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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이면 좀 어때… 자본주의 욕망, 예술에 솔직히 담다 [Weekend 문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03 04:00

수정 2023.11.03 04:00

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6) 美현대미술가 제프 쿤스
풍선 개·토끼 등 조각 작품으로 유명
"작품이 비평이 되는 순간 가치 잃어"
"예술도 비즈니스" 워홀 후계자 별명
제프 쿤스와 '마이클 잭슨과 버블'
제프 쿤스와 '마이클 잭슨과 버블'
'네오팝아트'로 불리는 미국 작가 제프 쿤스(68)의 미술사적 의의나 역할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순수미술에 대한 도덕적이고 비평적 기능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쿤스의 예술은 불경스럽다. 그는 지난 50여년 동안 계속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1985년 프랑스 의류회사의 광고 도용으로 벌금형에 처한 이후 10년 주기로 도용 문제로 법적 논쟁에 휘말려왔고, 이탈리아 정치인이자 전직 포르노 배우였던 전 부인과의 연인 관계를 다룬 '천국에서처럼'(1989~1991) 시리즈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2010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었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2022년 월드컵에 맞춰 카타르 미술관에서 기획한 쿤스의 회고전이 우리시대 시각문화의 '일상성(banality)'을 대변한다고 했지만, 1100억원에 달하는 '토끼'(1986)와 같은 작업을 평범한 '일상성'과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다.


1980년대 금융산업과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미술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하던 시기 '예술도 비즈니스'라는 1960년대 앤디 워홀(1928~1987)의 언명을 크게 계승한 작가라는 것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워홀로부터 쿤스로, 지위 상승 욕구

워홀과 쿤스는 작업 자체보다 자신들의 신변잡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특히 쿤스는 펜실베이니아의 미국 노동자 계층 부모가 열심히 돈을 모아서 플로리다에 집을 장만했고, 본인이 증권시장에서 브로커로 일했다는 등의 개인사를 늘어놓는다.

쿤스의 초기 작업 '세계의 공, 총체적 평형 탱크'(1985)는 흑인 노동자 계층 청소년의 꿈인 '�g드림(농구 선수로 성공해서 사회적 명성과 부를 얻음)’을 다룬다. 이후 ‘럭셔리와 쇠퇴’(1986)나 ‘마이클 잭슨과 버블’(1988)은 각각 자본주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럭셔리 취향과 대중문화를 다룬다. 여기서 화려한 금색 장식의 요란한 키치적 외향과 함께 쿤스가 자주 강조하는 ‘작업이 어떠한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2008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쿤스는 ‘마이클 잭슨과 버블’을 ‘우리 시대의 피에타’, 즉 ‘속죄양’이라고 규정한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문화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죄의식과 쾌감’의 이중성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베르사유와 쿤스, 문화적 우월주의

1990년대 중반부터 쿤스는 잘 알려진 ‘풍선’ 시리즈를 시작했고, 크기·에디션·주제(강아지 백조 토끼 돈 하트)·색상(블루 마젠타 노랑 오렌지 빨강)에 따라 작업물을 생산해오고 있다. 작업의 개별 크기뿐 아니라 수를 늘려서 전 세계 어디에서도 그의 작업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관객)가 익숙해지면 질에 대한 비판적인 저항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마케팅 수법의 일환이기도 하다.

2008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회고전은 유럽 문화예술계의 인증을 받는 자리이자 문화적 우월주의나 속물주의에 쐐기를 박은 이벤트였다. 대표적인 베네치아 예술가 베로네즈의 작업 옆에 쿤스의 ‘개 풍선’이 전시됐다. 덕분에 베르사유 관광객이 늘어났지만, 프랑스 성을 관리하는 재단 측 위원은 전 세계 관광객이 바로크 건축보다 쿤스의 작품을 더 기억하게 될까 걱정했고, 전시 기간 중 바로크 음악을 틀어서 분위기를 달리 조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루이 14세의 식민주의 야욕을 상징하는 바로크 건축물과 1980년대부터 시작된 금융자본주의 표상으로서 쿤스의 ‘개 풍선’은 중요한 역사적 현상을 공유한다. 위대한 건축과 미술은 집중된 부와 권력의 시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곤 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 예술과 자본주의적 삶

인간 욕망을 제어하지 않고자 하는 시대, 이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진영과 솔직해지기를 원하는(혹은 합리화하는) 진영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쿤스는 예술이 비평적으로 흐르는 순간 "게임에서 진다"고 단언한다. 특정한 현상을 비판하고 그로부터 메시지를 도출해내는 순간 예술은 독자적인 가치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 예술은 삶과 어떤 거리감을 가져야 하는가. 적어도 쿤스는 예술이 시장경제 체제에 전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삶을 배반하지 않고 덜 위선적으로 되는 일이라고 화답한다.

고동연 미술평론가·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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