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염치없는 예산심의 과정이나 세금도둑들이 날뛰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대비 재정여력이 있으니 증세를 하면 된다는 주장은 세금도둑들에게 관대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회계와 자금집행이 불투명한 단체에 지급되는 보조금, 인기영합적 현금살포 등 부당한 재정누수 요인을 막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재정지출의 효과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2024년에도 건전재정 기조를 견지할 것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정책 방향은 플라톤의 정의에 부합된다. 이것은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행처럼 되어온 재정만능주의에 제동을 거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2010년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트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90% 이상인 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는 결과를 내놨는데 토머스 헌든, 마이클 애시, 로버트 폴린이 데이터 오류를 지적하고 폴 크루그먼이 국가부채보다 실업률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등 재정확장론에 힘이 실렸었다. 그런데 데이터 오류를 시정한 뒤에도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상승할수록 경제성장률은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고 2014년 페스카토리, 산드리, 사이먼은 GDP 대비 정부부채라는 특정 비율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이 비율이 높을수록 조기 재정집행이나 높은 인플레이션 발생으로 경제의 변동성을 크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두 의미 있는 연구들이지만 재정지출의 내용이 건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 혈세가 어디로 이동해 낭비가 되고 불만을 만들고 위축시키는지, 아니면 필요한 곳에 쓰여 희망을 주고 격려하는지가 중요하며 플라톤의 정의는 이에 대한 개념이다.
2022년부터 인지된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급격한 금리인상 그리고 곧 물가가 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큰 자신이 없는 것은 그동안 돈을 풀고 부채로 돌려막은 것도 막대한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함께 국채 발행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기축통화국조차도 돌려막기를 끝없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 국민의 조세저항이 없다고 해서 기본이 무시되는 것은 플라톤의 정의가 아니다. 증세를 논하기 전에 세수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가려야 한다. 이익 카르텔들이 국가 예산에 기생하며 생산적인 기업활동을 방해해 성실하게 성장하려는 중소기업을 역차별하는 것, 새만금 잼버리 사태에서 나타난 업무관련성 없는 외유성 출장, 국회의원 정책연구비에서 나타나는 일탈행동, 긴급한 재정수요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편성되어야 하는 추가경정예산을 습관적으로 펴온 것 등을 바로잡아야 가치 있는 곳에 자원을 쓸 수 있다. 총계 변수를 대상으로 한 공허한 재정건전성 논쟁, 내용에 집중하지 않는 허세를 뒤로하고 심하다 싶은 세금도둑질을 잡아내고자 하는 수사기관들, 경제부처들에 박수를 보낸다.
이종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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