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총성 없는 예산전쟁의 막이 올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3일 전체회의를 갖고 경제부처의 2024년도 예산안 심사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27개 기관이 대상이다. 7∼8일에는 비경제부처 예산안 심사, 9∼10일에는 종합 정책질의가 각각 열린다.
14일부터는 예산안의 감액·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예산소위)가 본격 가동된다. 예결위는 이달 30일 전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의결할 계획이다. 정부는 앞서 656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 보다 2.8% 늘어났는데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로 20년 만의 최소 증가 폭이다. 국민의힘은 원안 유지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건정 재정 방침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예산을 대폭 증액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새해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인 12월 2일을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기한 내 처리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및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이 예산 국회의 향배를 결정할 핵심 뇌관이다.
야당은 다음 달 9일 본회의에서 두 법안을 처리키로 했다. 여당은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면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결의했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건의카드도 만지고 있다. 야당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쌍특검 법안(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의 본회의 표결도 강행할 예정이다.
야당이 수적 우위를 내세워 법안을 통과시키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여야가 맺은 모처럼의 신사협정은 휴지조각으로 변한다. 예산안 처리전망은 더욱 어두워진다.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첫 예산안인 2023년도 예산안은 극심한 진통 속에 법정 기한을 22일 넘긴 지난해 12월 24일에 가까스로 처리됐다. 이는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가장 늦게 처리된 기록이다.
내년도 예산의 최대 쟁점은 올해 대비 16.6%가 줄어든 R&D 예산이다. 전년 대비 5조1626억원이 삭감된 25조9152억원이 편성됐다. 민주당은 R&D 예산의 증액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그러나 전날 윤 대통령이 "R&D 예산이 잘 쓰일 수 있다면 두세 배 증액도 가능하다"라고 한걸음 물러난데 이어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필요한 부분은 대거 증액하겠다"라고 밝혀 해결의 가능성이 보인다. 정부가 예산을 대거 삭감한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사업 예산과 새만금개발청 예산 역시 쟁점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등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올해 예산안 심사는 내년 4월 총선을 눈앞에 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선다. 공천과 당선에 혈안이 된 국회의원들이 표밭 갈이용 선심 예산편성의 유혹에 빠질 게 뻔하다. 내 지역구를 위한 쪽지예산이나 짬짜미 예산은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나랏빚이 1100조를 넘어선 지금 재정 건정성 유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가 경제에 짐이 되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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