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랜드마크 가운데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9·11 추모공간인 그라운드제로다. 그라운드제로는 지난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사망한 2977명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당시 테러로 무너져버린 2개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던 곳에 조성했다.
거대한 사각 구멍의 4개 면에 인공폭포를 만들어 쉴 새 없이 물이 떨어지고 있는 형태다. 떨어진 물들은 가운데로 모여 바닥에 있는 작은 사각형으로 흘러 들어간다. 거대한 공간에 조용히 흐르는 물결을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봤다. 당시 월드트레이드센터를 채웠을 수천명의 사람들이 가고 없는 빈자리를 물결들이 채우고 있었고, 쉴 새 없이 흐르는 물결들은 일면식도 없는 그들을 그리워하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이런 인공폭포가 2개다.
사실 우리 정서로는 절대 불가능했을 공간이다. 그야말로 뉴욕 금싸라기땅 한가운데에 추모공간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테러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더듬어 보는 것이 새로 고층빌딩을 짓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많은 사건·사고를 겪었다. 우리나라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방식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다. 누구나 알 만한 사건·사고가 많지만 기억나는 추모공간이 없다.
추모공간은 유가족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직접 가보고, 다시는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도록 하는 곳이기도 하다.
죽음은 슬픈 것이 맞다. 이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분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죽음을 동반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고, 그 아름다운 삶을 미처 다 살아보지 못하고 떠난 이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비극은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비극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순간, 비극은 다시 반복되는 게 아닐까. 그라운드제로에 가보니 일상적으로 떠난 이들을 추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 속에서 비극을 되새김으로써 다시 반복되지 않게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ronia@fnnews.com 이설영 전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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