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술에 배 부를 순 없을까. 납품단가 연동제 시행 한 달을 넘긴 후 부쩍 많이 드는 생각이다.
중소기업 업계 15년간 숙원 사업이었던 납품단가 연동제가 지난 10월 4일부터 시행중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부작용들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차라리 제도화되지 말았어야 한다는 한탄마저 나오고 있다. 입법 과정상 예견된 문제점들이었고 해결도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정책당국자 부터 중소기업 업계 대표들도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느냐"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시행 자체만으로 만족해하는 것 같아 아쉽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10% 이상인 주요 원재료 가격이 ‘일정 비율’ 이상 오르면 대기업·중견기업 등 원청과 중소기업인 하청 업체가 사전에 협의된 경우 이를 납품단가에 연동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만 1억원 이하 소액 계약과 90일 이내의 단기 계약은 제외된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납품단가도 오르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이제라도 제값을 받을 수 있다니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을까.
문제는 예외조항과 함께 원청 업체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원청업체들은 "주요 원재료가 10% 이상 사용되는지 알아야 한다"며 하청업체에 제조원가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응당 당연한 요구같지만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은 하청업체인 '을(乙)'의 입장에선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경기도에 위치한 A 기업 재무담당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기술탈취도 심각한 상황인데 제조원가를 공개하라는 것은 자칫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며 "갑의 횡포가 더 심각해 졌다"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또 1억원 이하 소액 계약과 90일 이내의 단기 계약이 예외조항이다 보니 원청 업체에서는 일명 '쪼개기계약'으로 법망을 피해간다.
뿐만 아니라 기업환경이 변하면서 기존 원청 업체들이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변했지만 연동제에 참여하는 '동행기업'에는 중견기업 참여는 저조하다.
앞서 언급했듯 부작용과 악용 사례가 발생될 수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반영은 안됐다. 현 상황이면 연동제 법제화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윤석열 정부 '약자와의 동행 1호법안'이다. 납품대금 연동제가 있으나 마나한 법으로 전락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예외조항과 탈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kjw@fnnews.com 강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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