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회계사 아내, 은행원 남편..부부는 ○○에게 직업을 뺏겼다[영화로운 텅장탈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25 06:00

수정 2023.11.25 14:41

AI가 대체할 직업은 무엇일까
BBC•HBO TV 시리즈 '이어즈&이어즈'
이어즈&이어즈. 왓챠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어즈&이어즈. 왓챠 유튜브 채널 갈무리

[파이낸셜뉴스]
“스펙이 좀 과하신 것 같은데...그쪽 같은 사람들 요즘 수두룩해요. 저기 닐은 옥스퍼드대를 나왔대요”
금융회사를 다니며 수십억달러를 굴리던 스티븐(로리 키니어 분)은 어느 날 직업을 잃었습니다. 미국계 회계법인 소속으로 '잘나가던' 그의 아내 셀레스트(트니아 밀러 분)도 회계사를 대체할 ‘소프트웨어’에 밀려났습니다. 스티븐이 자전거로 택배를 나를 일을 하기 위해 물류창고에 갔습니다. 스티븐의 이력서를 넘겨보던 관리자는 그의 허벅지가 ‘튼실한지’ 곁눈질하며 말합니다. “스펙이 좀 과하시네...”
영국의 국영방송 BBC가 HBO와 공동 제작한 TV시리즈 ‘이어즈앤이어즈(Years & Years, 2019)’는 스티븐의 형제, 부모자식 3대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딸 베서니가 ‘트렌스젠더’ 되고 싶어한다고 지레짐작한 스티븐 부부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자는 말에 응합니다. 딸의 선택을 존중하자고 둘은 약속합니다.

이어즈&이어즈 예고편. 왓챠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어즈&이어즈 예고편. 왓챠 유튜브 채널 갈무리

베서니는 '남자가 아니라 로봇이 되고싶다'고 말합니다. 눈에 카메라를, 손끝에 전화기를 삽입한 ‘트랜스 휴먼’이 되고 싶다는 딸 앞에서 엄마는 분노합니다. 딸이 정신을 데이터 공간으로 옮기고 육체는 로봇화하고 싶다는데 걱정이 될 수밖에요. 명문대학을 나와 고소득자가 되기까지 끝없이 경쟁한 날들이 떠올랐을까요. 엄마는 딸이 철이 없다는 듯 꾸짖습니다.

총 6부작인 드라마는 오는 2034년까지의 가까운 미래를 ‘있을법한 디스토피아’로 그려냅니다. 국제 질서가 무너지고 포플리즘 정치가가 득세합니다. 전쟁의 포화 속 금융시장은 불안해지고 은행들은 줄도산했습니다. 금융투자 전문가였던 아빠와 회계사 엄마가 '반백수'가 된 상황, '반쯤' 트랜스 휴먼이 된 베서니는 데이터 수집과 처리 능력을 인정받아 정부에 고용됩니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지금이라도 ‘데이터 처리 기술’을 배워야 하나 불안해졌습니다. 챗GPT, 빙, 바드, 네이버 큐 등 생성형 AI기술이 기사도 잘 쓸텐데 두려워졌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일자리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엑셀과 계산기 앞에서 주판을 튕기며 먹고살았던 수많은 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직업도 생겼습니다. AI기술이 상용화되면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생겨날까요.

고용없는 미래..고소득, 고학력 직업이 먼저 위협받는 역설

지난 16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BOK 이슈노트 ‘AI와 노동시장 변화’는 이 같은 주제를 다뤘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기술이 일상에 스며들면 의사, 회계사, 변호사 같은 고소득·고학력 ‘일자리’가 불안해집니다. 산업용 기계·로봇, 소프트웨어 등 기존 기술이 단순작업을 수행하던 근로자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한 역사적 사실과는 상반된 전망입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 소속 한지우 조사역과 오삼일 고용분석팀장은 “AI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며 기업의 AI 활용도 여전히 초기 단계”이므로 “현시점에서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고용 없는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AI 기술이 생산성 증가를 불러오겠지만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진단입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회계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 미래에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이 근거로 삼은 AI 노출 지수는 현재 AI 기술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해당 직업의 업무에 얼마나 집중돼 있는지를 나타낸 수치로, 일반 의사와 한의사의 AI 노출 지수가 상위 1% 이내에 들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이 발표한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회계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이 미래에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이 근거로 삼은 AI 노출 지수는 현재 AI 기술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해당 직업의 업무에 얼마나 집중돼 있는지를 나타낸 수치로, 일반 의사와 한의사의 AI 노출 지수가 상위 1% 이내에 들었다. 사진=연합뉴스

(한은 제공) /사진=뉴스1
(한은 제공) /사진=뉴스1

이슈노트에 따르면 국내 일자리 중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 일자리는 약 341만개로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의 12% 수준입니다. AI 노출 지수 상위 20%에 해당하는 직업을 식별하고,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를 더해 대체 가능성이 큰 일자리 수를 추정한 결과입니다. 임계점을 상위 25%로 상정하면 위협받는 일자리는 약 398만개(전체 일자리의 14%)로 늘어납니다.

AI 노출 지수가 높다는 것은 AI기술이 그 직업이 하는 일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보고서는 AI에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으로 △일반 의사(상위 1% 이내) △전문 의사(7%) △회계사(19%), △자산운용가(19%) △변호사(21%) 등을 꼽았습니다. 이 전문직들이 하는 일이 대용량 데이터를 활용해야하는 만큼 AI로 효율화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반면 △기자(상위 86%) △성직자(98%) △대학교수(98%) △가수 및 성악가(99%)는 AI 노출 지수가 낮았습니다. 일을 하는데 대면 접촉 즉, 사회적 관계 형성이 중요한 직업들입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윤리적 판단과 소통

물론 이같은 분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의사를 예로 들어볼까요. 의사가 하는 주된 업무에는 진찰, 수술, 처방 등이 있습니다. 의료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업무들은 주어진 데이터(환자의 상태, 주요 처방에 따른 작용과 부작용 등)를 다루는데 능숙한 AI가 대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의료자원이 충분한 상황을 가정한 것입니다.

여기 1시간 안에 수술을 받지못하면 시력을 잃는 환자가 2명 있습니다. 다행히 약 50분이 걸리는 수술을 받으면 완치할 수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문제는 의사와 수술방 모두 하나뿐이라면, 의사는 선택을 해야합니다. 환자 A는 5살, B는 75살입니다. B가 병원의 VVIP라면, 동료 의사의 소개로 내원한 환자라면 의사는 누구를 수술해야할까요?
이 같은 질문에 AI는 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책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의 판단은 언제나 윤리적 선택을 동반합니다. 성공률이 10%에 불과한 심장수술을 할지 말지 환자(보호자)의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능력도 의사의 필수 업무입니다.

하나만 더 고민해볼까요. 녹내장예방에 효과가 특출난 100만원짜리 주사가 있습니다. 문제는 건강보험이 안되는 약물인데다 1번 맞는 것으로는 약효과 낮고, 5번은 맞아야합니다. 비교적 효과가 낮지만 보험처리할 수 있어 환자의 부담은 5만원에 불과한 다른 예방주사는 1번만 맞아도 됩니다. 어느 시골마을의 의사가 90대 노모를 모시고 온 60대 보호자에게 어떤 약을 추천해야 좋을까요? 옳을까요?
이어즈&이어즈로 돌아와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베서니의 할머니 뮤리얼(앤 리드 분)은 온 가족이 모인 저녁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난 모든 게 잘못되는 걸 봤다. 시작은 슈퍼마켓이었어, 계산대 여자들을 자동 계산대로 바꾼 게 시작이었지. 아무것도 안했잖아? 20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거리 시위는 했니? 항의서는 썼어? 다른 곳에서 장을 봤나? 안했지? 씨근덕거리만 하고 참고 살았어.

이제 계산대 여자들은 다 사라졌다. 사실 우린 그 계산대를 좋아하고 원해, 거닐다가 장 볼 물건을 고르기만 하면 되거든. 계산대 여자와 눈 마주칠 일이 없지. 우리보다 적게 버는 여자들 말이야. 인제 없어졌어. 우리가 없앴고 쫓아낸 거야. 참 잘했어, 그러니까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축하한다... 다들 건배하자.
분명한 한가지는 AI는 사람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AI의 판단 알고리즘은 인간이 설계해야합니다.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도 우리가 선택합니다.
원자력 기술로 핵폭탄을 만들어 도시를 섬멸할지, 발전소를 지어 에너지를 활용할지 선택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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