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K콘텐츠 따라 떠나는 ‘한류 성지순례’
전세계 아미들 모인 ‘2023 BTS 페스타’
2주간 75만명 찾아 美CES보다 7배 많아
K콘텐츠 따라 떠나는 ‘한류 성지순례’
전세계 아미들 모인 ‘2023 BTS 페스타’
2주간 75만명 찾아 美CES보다 7배 많아
이달 초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그룹이 내년 여행 트렌드를 전망하는 '언팩 24(Unpack 24)'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익스피디아는 △유명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따라하는 '스크린 투어리즘' △음주하지 않고 즐기는 휴양 방식을 가리키는 '알코올 프리' △호텔이나 숙소 분위기를 중시하는 '바이브(Vibe) 체크인' 등을 내년에 유행할 3대 여행 트렌드로 꼽았다. 그러면서 "K팝을 비롯한 대중문화가 잘 발달한 한국 시장의 경우는 가장 주효한 전략으로 스크린 투어리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크린 투어리즘의 상위 개념인 콘텐츠 투어리즘(Contents Tourism)이 관광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문화콘텐츠와 연관된 장소를 찾아가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드라마 '겨울연가'의 남이섬이나 영국 런던과 옥스포드를 대상으로 한 '해리포터 투어', 이탈리아 베로나의 '줄리엣의 집' 같은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경향들이 강력한 팬덤과 만나면서 단순한 관광지 방문을 넘어 '성지 순례'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콘텐츠 투어리즘' BTS는 힘이 세다?
올해 서울에서 열린 '2023 BTS 페스타'가 그런 경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6월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을 맞아 서울 곳곳에선 K팝 콘서트를 비롯해 팬 싸인회, 무대의상 전시회, 불꽃놀이 등 다양한 기념 행사가 열렸다. 서울 명동, 여의도한강공원, 남산서울타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경복궁 등 행사가 열린 곳이나 서울의 주요 관광지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아미'(BTS 팬)들로 넘쳐났다. 2023 BTS 페스타가 열린 6월 12일부터 25일까지 2주간 이들 행사장을 찾은 인원은 국내외 관광객을 포함해 총 75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참가자 수(약 11만명)에 비해 무려 7배나 많은 수치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본 곳은 관광업계와 유통업계다. BTS 무대의상이 전시된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은 아미들의 성지로 이름이 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서울 명동에 있는 유명 호텔들은 만실에 가까운 예약률을 보였다. 또 BTS 데뷔 10주년 행사가 열린 여의도 더현대서울의 외국인 관광객 매출은 전월 같은 기간에 비해 200% 넘게 상승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15일 부산에서 열린 BTS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콘서트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에만 5만2000여명의 관람객이 몰렸고, 이 콘서트를 전후해 부산을 찾은 해외 관광객의 숫자도 50만명을 상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대비 20만명 더 많은 수치로 당시 부산시가 휴대전화와 카드 사용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BTS 1회 공연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경제효과는 무려 1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프로도 효과'와 일본 애니의 성공 사례
콘텐츠 투어리즘의 성공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프로도 효과(Frodo Economy Effect)'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뉴질랜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프로도'란 피터 잭슨 감독의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2001~2003년) 속 주인공의 이름으로, 당시 인구 450만명의 뉴질랜드는 이 영화 시리즈 개봉 이후 관광객 수가 연평균 5.6%씩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이로 인한 직접 고용효과만 총 3억6000만달러(약 4600억원), 관광산업에 미친 파급효과는 약 38억달러(약 4조9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과 '슬램덩크'의 성공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17년 국내에도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국내에 '콘텐츠 투어리즘'이라는 용어를 알린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기후현 히다 지역의 호수와 후루카와역, 버스정류장, 시립도서관 등이 SNS 성지로 떠올랐다. 이 성지순례 효과로 인구 2만5000명의 작은 시골 마을 히다는 연평균 100만명의 외지인이 방문하는 인기 여행지가 됐다.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슬램덩크'(1993~96년)의 배경지인 가마쿠라도 마찬가지다. 인구 17만명의 지역 소도시 가마쿠라는 이른바 '슬램덩크 특수'로 매년 200만명 이상의 여행객이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흥행 대박을 터트리면서 가마쿠라 고등학교 인근에 있는 기차 건널목과 쇼난 해안은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슬램덩크 팬들로 몸살을 앓고 있을 정도다.
"K관광의 핵심 키워드는 K콘텐츠다"
정부도 이런 흐름을 간파하고 올해 초 내놓은 제6차 관광진흥기본계획(2023~2027년)에 K콘텐츠와 관광을 전략적으로 융합하는 정책을 포함시켰다. 주로 동남아 지역에서 K팝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열풍을 일으켰던 한류가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으로 확장되고, 그 영역도 K팝과 드라마를 넘어 K무비, K웹툰, K뷰티, K푸드 등으로 확장된 만큼, K콘텐츠에 대한 세계적 인지도와 호감도를 관광 수요로 전환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27년까지 방한 관광객을 최대 3000만명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콘텐츠 투어리즘의 관점에서 보자면 K콘텐츠를 활용한 K관광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단계를 넘어 성지순례 하듯이 '직접 가보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동력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 이와 관련해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재밌있다'의 차원에서 '가봐야겠다'의 차원으로 바꿔줘야 진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면서 "코로나19를 지나며 리셋된 글로벌 관광산업의 헤게모니는 이제 저마다 발굴해내는 콘텐츠와의 결합에서 결판 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