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인간이 가진 다섯가지의 욕망을 오욕(五慾)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물욕이에요. 왜 물욕을 맨 앞에 넣었을까? 이것이 인간의 실체를 밝히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4년 만에 장편소설 '황금종이'(해냄)를 출간한 소설가 조정래 작가(80)는 20일 "민족의 역사와 현실의 갈등을 기록했던 1, 2기를 떠나 인간의 실존과 현실,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 욕구를 탐구하는 3기(후반기)를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1970년 등단해 단편과 중편을 발표한 1기를 거쳐 '대한민국 근현대 3부작'이라고 불리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2기 작품세계를 화려하게 마무리한 조 작가의 마지막 주제는 '돈'이다.
오랜 구상 끝에 이번 소설을 완성했다는 그는 "가난했던 대학생 때부터 돈이라는 것을 생각했고 돈이 삶을 괴롭힐 때마다 수없이 고민했다. 이에 대한 생각은 평생에 걸쳐서 했고 그게 우리의 공통된 삶"이라고 설명했다.
조 작가와 마찬가지로 소설 속 주인공인 '이태하'와 등장인물들도 돈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이태하는 운동권 출신으로 검사로 일하다가 재벌 비리 문제를 덮자는 수뇌부에 반발하고 검찰을 떠난다. 이후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돈에 얽힌 사건들을 맡으며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밖에 죽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남긴 유산을 빼앗으려는 딸, 갑자기 월세를 4배로 올린 건물주를 폭행해 구속된 자영업자, 청소년들에게 담배와 술을 배달하며 받은 수고비로 연명하는 노인도 '돈 문제'로 얽혀 있다.
조 작가는 "나부터 탐욕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한지 되묻곤 한다. (소설에) 수십 가지의 돈과 관련한 사례를 적으면서 우리 삶이 어떤 모양인가, 얼마나 짐승적인 삶인가, 오히려 짐승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세상에서 바람직하게 사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다"며 "운동권 출신의 이태하 변호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삶의 탈출구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조 작가는 주인공을 운동권 출신으로 설정한 데 대해 "한국의 현대사가 군부독재에 빠져 있을 때, 오늘의 민주화를 이룬 게 운동권 출신들"이라며 "그들이 단결해서 40~50명의 국회의원을 만들어냈다면, 그야말로 국민을 위한 세상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에는 또 한 명의 중요한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이태하가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조언을 구하는 운동권 선배 '한지섭'이다. 그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정치계에 입문하지만, 초심을 잃고 권력에 야합하는 운동권의 모습에 귀농을 결심한다.
이태하와 한지섭은 조 작가가 386세대에게 걸었던 희망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조 작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사인해줄 때마다 '늘 첫 마음으로'라는 문구를 적어준다"며 "이것은 내가 작가로서 지닌 마음이다. 흔들릴 때마다 채찍질해가면서 (이 말을) 지켰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영혼이라는 게 뭘까. 나는 어디에서 왔고 죽으면 어디로 갈까. 그것이 다음 작품의 주제"라며 "몇 권이 될진 모르지만 일단 써보려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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