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부동산신탁사의 신탁계정대여금이 9개월새 2배 가량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난 공사비와 이자 등을 감당하지 못한 중소 건설사들이 시공을 포기하자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책준형)'계약을 맺은 신탁사들이 떠안는 금액이 가파르게 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원가상승→시공포기→신탁계정대여금 증가→신탁사 부실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리스크가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부 대책은 여전히 검토단계에 머물러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14곳 부동산신탁사의 올 9월말 기준 신탁계정대여금이 4조800억원까지 늘어났다. 신탁계정대여금은 2021년 12월 2조1000억원에서 2022년 12월 2조5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들어 단 9개월만에 2배 가량 늘어난 4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신탁계정대여금은 사업장 부실, 자체개발 등의 이유로 신탁사가 자체계정에서 빌려준 대여비를 말한다. 사업비를 회수하지 못할 경우 부실로 연결될 수 밖에 없어 재무건전성을 살펴보는 주요 지표로 활용된다.
A신탁사의 경우 지난해 말 14억원에서 올 9월말 820억원으로 무려 58배 규모로 치솟았다. 같은기간 B신탁사도 3400여만원에서 11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비 개발신탁을 주력으로 하는 C사만 거의 변함이 없었으며 모든 신탁사의 대여금이 크게 증가했다.
한 신탁사 관계자는 "대여금이 폭증했으나 자기자본이 지난해 말 5조2000억원에서 올 9월말 5조6000억원으로 증가했다"며 "아울러 자체개발 비중을 늘리다 보니 대여금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신탁계정대여금은 주로 책준형과 차입형(자체개발)에서 발생한다. 둘 다 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책준형 상품에서 경고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책준형은 신탁사가 대주단으로부터 돈을 빌려 준공을 책임지는 상품이다. 현재 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다. 그에 따른 책임은 우선 시공사가 진다. 시공사가 부도·파산 등으로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면 신탁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신탁계정대여금 가운데 상당수가 책준형 상품 운영 과정에서 시공사의 파산으로 신탁사가 자기자금을 투여한 경우로 보고 있다. 실제로 부도처리된 중소 건설사들의 개발사업 대부분이 책준형이다. 물류센터·지식산업센터·오피스텔 등 비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대한건설협회 한 관계자는 "책임준공을 못해 채무를 떠 안느니 파산이나 부도가 낫다고 보는 중소 건설사가 대부분"이라고 하소연했다. 김선주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신탁계정대여금은 늘고 신규 수주는 줄고 있다"며 "재무 리스크는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탁업계·건설협회 등은 금융당국과 국토교통부 등에 올해 초부터 책준형 리스크 차단을 위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대주단의 시공사 및 신탁사에 대한 책임준공·채무인수 기한 동시 연장, 대주단도 손실 부담 등을 건의했다. 업계는 지난 9월께 대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정부는 아직도 세부 내용을 검토중이다.
ljb@fnnews.com 이종배 연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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