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지구 점령 놓고 계속 말 바꿔
PA에게 관리 맡기는 방안 외에 대안 없어
PA 역시 믿기 힘들어, 일단 평화 유지군 파병 필요
이행 기간 설정해 PA 조직 개편한 뒤 가자지구 맡길 수도
PA에게 관리 맡기는 방안 외에 대안 없어
PA 역시 믿기 힘들어, 일단 평화 유지군 파병 필요
이행 기간 설정해 PA 조직 개편한 뒤 가자지구 맡길 수도
[파이낸셜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충돌한 지 6주 이상 지난 가운데 하마스가 다스리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미래에 국제적인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과 카타르, 이스라엘 등의 관계자들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이스라엘 철군 이후 이행 기간을 거쳐 가자지구를 접수하는 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설명했다. 서방과 아랍 국가들은 PA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을 토대로 나라를 세워 이스라엘과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이 유일한 답이라는 입장이나 이스라엘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오락가락하는 이스라엘, 가자 점령 강행하나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7일(이하 현지시간) 하마스의 선공 이후 가자지구를 폭격했으며 같은달 27일부터 지상군을 보내 가자지구 북부를 장악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달 6일 미 ABC뉴스와 인터뷰에서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해 전반적인 안보를 무기한 책임질 것"이라며 일시적 점령을 시사했다. 8일 미 백악관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는 9일 미 폭스뉴스를 통해 "우리는 가자지구를 정복하려는 게 아니다. 점령하거나 통치하려는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10일 가자지구 접경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만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계속 통제할 것이며 국경의 보안을 감독하기 위해 국제군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도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하마스와 전쟁 이후 "우리는 공백을 놔둘 수 없다. 우리는 어떤 것이 체계가 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부활을 막기 위해 "매우 강력한 힘"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21일 인도 매체 데칸헤럴드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과 아랍 정부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주둔에 반대했다. 관계자들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단기간에 군사적인 승리를 거뒀으나 이후 몇 년에 걸쳐 폭력 사태를 겪었다며 이스라엘이 미국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PA가 가자지구에서 쫓겨나기 전에 PA의 가자지구 치안대장을 역임했던 모하메드 달란은 두바이에서 외신들과 만나 "이스라엘군이 점령군이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그들을 점령군으로 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마스 지도부와 병사들이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항복할 바에 자폭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PA 외에 대안 없어
데칸헤럴드는 2명의 미 관계자와 4명의 아랍 정부 관계자, 4명의 외교관들을 인용해 미국과 아랍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가자지구 전후 계획이 아직 없다고 지적했다. 달란은 자신을 포함해 어느 누구라도 뚜렷한 정치적 전망 없이 가자지구를 관리하려고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직 이스라엘과 미국, 다른 국제사회 모두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8일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보낸 기고문에서 “궁극적 평화를 위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PA 통치하에 재통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날 네타냐후는 “현재 PA는 가자지구를 통치할 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역은 1948년에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국가를 세우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면서 혼란에 빠졌다.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3년 미국의 중재로 오슬로 협정을 맺고 양측의 정부와 독립을 인정하기로 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 등 열강들은 양측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 경계를 기준으로 각각 국가를 세우는 2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있다. 해당 경계에 따르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모두 PA의 지배 영역이지만 가자지구는 1967~2005년 사이 이스라엘군이 점령했다. 동예루살렘은 아직도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고 있다. PA는 이스라엘군 철수 이후 잠깐 가자지구를 통치했으나 2007년 강경 무장정파 하마스의 반란으로 가자지구를 상실했다.
PA는 일단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PA의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은 지난 10일 연설에서 2국가 해법을 추진한다는 정치적인 합의가 있다면 가자지구를 다시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PA의 전신으로 지금은 상징적인 조직으로 남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후세인 알 셰이크 사무총장은 영국 BBC를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차를 통해 가자지구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 인수 전에 정치적인 합의부터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화 유지군 주둔 이후 PA 고쳐 쓸 수도
문제는 지금 PA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PA의 집권 여당인 파타당은 부패와 권력 다툼으로 민심을 잃었고 2006년 총선에서는 132석 가운데 45석을 얻어 하마스에게 참패하기도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과거 중동 담당관을 지냈던 테드 싱어는 PA에 대해 “신뢰성이 부족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도 겨우 통치한다”고 평가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압바스가 이미 87세의 고령인데다 부패한 지도자로 불린다고 분석했다.
바이든읜 18일 기고문에서 국제사회가 가자지구의 ‘임시 안보 지원’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 평화 유지군 파병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추정된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0일 발표에서 "가자지구를 유엔 보호령으로 만드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철군 이후 PA가 가자지구를 인수하기 전까지 이행 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테흐스는 "PA가 가자지구에서 책임을 맡도록 힘을 실어 줘야 한다"며 "모두가 모여 PA를 위한 이행 기간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PA의 가자지구 인수 이후 2국가 해법까지 실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부분의 이웃 국가들이 가자지구에 군대를 보낼 생각이 없다. 18일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교장관은 “평화 유지군 파견은 본질적으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파괴를 승인하는 일이다. 그 어떤 아랍국도 가자지구에 군인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이 매일 사람을 죽이고 있다며 "사후 처리"를 맡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외신들은 아랍 이슬람 국가들이 괜히 가자지구에 군대를 보냈다가 현지 주민과 충돌하는 상황을 걱정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역시 내년에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해외 파병 미군을 늘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PA에게 가자지구를 주기 전에 조직 개편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친서방 인사인 모하메드 달란은 압바스를 대체할 차기 PA 수장으로 꼽히고 있지만 워낙 기존 PA 고위층 및 하마스 지지자들과 사이가 나빠 조직 운영이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파타당 지도자로 2002년부터 살인 혐의 때문에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는 마르완 바르구티의 경우 팔레스타인 내 지지 세력이 많지만, PA 수장에 오르면 이스라엘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국제위기감시기구의 주스트 힐터만 중동 대표는 "PA 지도부를 반드시 젊게 만들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어려운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마스 계열 후보가 PA 지도부 선거에 나오면 이길 수밖에 없다며 아랍 국가들이 이러한 하마스 후보 및 자국이 싫어하는 후보를 거부한다고 내다봤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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