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직은 '신의 직장'
특권 누리며 헌신은 안 해
총선, 특권 축소 관철 기회
특권 누리며 헌신은 안 해
총선, 특권 축소 관철 기회
후끈 달궈진 총선 분위기는 여야 각 당에서 확연히 감지된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연일 '신당 창당'이란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 여권 분열을 우려하는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중재 손길마저 뿌리치면서다. 인요한은 '내부총질' 논란으로 윤석열 대통령 등 여당 핵심과 갈등해온 그에 대한 징계 해제를 얼마 전 관철시켰다.
더불어민주당 '공천 시장'도 조기 과열 조짐이다. 이른바 '개딸'의 위세를 업은 친명(친이재명)계의 독식 기미에 비명계를 중심으로 12월 탈당설이 제기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송영길·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출마 군불을 때자 친명 당 지도부의 속앓이도 깊어졌다. 지난 대선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당을 수렁에 빠뜨린 이들의 복귀가 총선에서 큰 역풍을 부를까 봐서다.
이 와중에 인요한이 '의원 특권 폐지'라는 정치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엄밀히 말해 특권 축소다. 각 당이 선거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수차 제기한 약속이었다. 올해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다시 불을 지폈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시민단체가 올 상반기 여야 의원 300명 전원에게 특권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겨우 6명만 찬성 의견을 밝혔다.
이는 국회의원직이 '신의 직장'이란 방증이다. 우리나라 의원 세비는 연간 1억5000여만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로, 1인당 GDP 기준으론 세계 톱클래스다. 게다가 운전기사 등 9명의 보좌진 연봉과 차량지원비, 해외시찰비 등도 국고로 지원받는다. 무려 186가지 특혜를 누린다. 보좌관 1명을 2명의 의원이 공유하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유럽 선진국 의원들을 보라. 대한민국은 의원 천국이다.
그러니 총선판은 늘 공급과잉 시장이다. 거칠게 비유하면 향기로운 꽃대에 진딧물 꾀듯 출마자들로 넘쳐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들은 당선 후 온갖 특권에 취해 거들먹거리기 십상이었다. 나라와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본분에 충실한 선량들이 외려 소수가 될 만큼.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다.
지난 9일 이원석 검찰총장이 이런 한국 정치의 고질을 잘 들춰냈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사건 수사검사의 탄핵소추안까지 발의하자 이렇게 항변했다. 즉 "뇌물을 받은 의원,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의원, 보좌관을 추행한 의원, 피해자 할머니의 보조금을 빼돌린 의원,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의원, 부동산 투기를 한 의원, 가상자산을 국회에서 투기한 의원 등에 대한 탄핵이나 제명은 우리 현실상 불가능하다"고.
이번에 인요한은 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의원 숫자 10% 감축, 세비 삭감 등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 여야가 함께 나서지 않는 한 폐지는커녕 줄이기도 힘든 지난한 과제다. 이재명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한 뒤 슬그머니 번복한 데서 보듯이. 그간 여야 각 당은 국민 눈치를 볼 필요가 있을 때마다 의원 특권 폐지란 깃발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으면서 빛이 바랠 대로 바랬다. 그래서 이솝우화 한 토막이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의 한 육상선수가 "원정 갔던 로도스섬에서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고 뻥을 치자, 옆 사람이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당장 뛰어보라"던 장면 말이다.
인요한 혁신위가 띄운 특권 축소 제안에 여야 의원들이 호응하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총선판이 바로 로도스임을 일깨워줘야 한다. 입법부 과잉 특혜를 내려놓도록 견인하는 과제도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권 폐지에 찬성하는 후보자에게 한 표를 행사해야 할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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