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전산망 사태를 단편적으로 얘기하기는 조심스럽다. 행정전산망을 구축하고 운영해 온 과정은 수많은 공무원과 정보시스템 인력들이 풍부한 예산도, 따라할 모델도 없이 영혼을 갈아넣는 과정이었다. 그 덕에 우리 국민들은 안방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떼고, 세금 계산에서 납부까지 원스톱으로 할 수 있는 편리를 누렸다. 먹통 사태를 겪었지만 여전히 복잡한 민원업무를 안방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세계 최고 서비스다. 그 공을 폄훼하고 비난만 하면 안된다. 그래서 국민의 신뢰를 잃을 위기에 있는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는 신중히 분석하고, 실용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전산망 수준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을 지향하는 우리 정부로서는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을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먹통사태 일주일이 되도록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술 전문가들은 원인파악이 안되는 바로 그 점이 이번 먹통사태의 근본원인이라고 짚는다. 모든 시스템은 각 단계마다 로그기록을 남기는데, 이를 역추적하면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원인을 짚어내지 못하는 것은 이상이 생긴 지점을 발견하고도 숨기거나, 책임을 미루느라 발표하지 못하거나, 여러지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갖은 의혹들을 관통해 부족한 것 한가지를 꼽으라면 '전문성'이다. 이번 먹통 사태 내내 복잡한 행정전산망을 한 눈에 꿰고 총괄 지휘하는 전문성 있는 책임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행정전산망은 지난 1983년 처음 설계도를 그린 이후 수차례 업그레이드를 거쳐왔다. 20평짜리 낡은 아파트에 방도 더 만들고 베란다도 확장하고 화장실도 하나 더 만들었던 과정 쯤 될 듯 싶다. 그런데 그 과정마다 행정전산망 전체를 한 눈에 꿰고 총괄 지휘할 수 있는 프로젝트매니저(PM)가 있었을까? 사고가 터지만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비난이 쇄도한다. 그런데 행정전산망에는 일반 상식으로 지시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었을 뿐 정작 전문성을 갖추고 복잡한 시스템들을 실질적으로 기획·관리할 PM이 없었던 것 아닐까 따져봤으면 한다. 더구나 모든 국민에게 개인별 맞춤형 민원서비스를 제공할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는 더더욱 전문성을 갖춘 PM이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 행정전산망 먹통사태는 앞으로 50년 이어질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위해 전문성 갖춘 PM을 먼저 세우라는 교훈을 던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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