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페소화를 폐기하고 미국 달러를 공식 통화로 삼겠다고 공언했던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이 계획에서 한 발 뺐다.
다음달 취임하는 밀레이 당선인이 여러 경로를 통해 달러화 추진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 실질적인 입안자인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 내정자 에밀리오 오캄포는 이에 실망해 총재를 맡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이하 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밀레이 당선인이 골병을 앓고 있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회복시키는 방안 가운데 하나로 들고 나왔던 달러화 계획을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밀레이는 22일 밤 인터뷰에서 오캄포의 해결방안을 좋아한다면서도 시장 여건을 먼저 감안해야 한다고 발을 뺐다.
밀레이 대선 팀에서 페소를 버리고 달러로 갈아타는 계획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었던 오캄포는 경제사 교수이자 투자은행가 출신으로 최근 달러화를 띄우는 보고서를 내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달러화를 추진해왔다.
세자리수에 이르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주범이 중앙은행의 무분별한 페소 발행에 있다고 보고 중앙은행을 없애고, 페소를 달러로 교체해야 한다는 발상이었다.
TV를 통해 대중에게 익숙한 경제학자인 오캄포는 아르헨티나 예산균형을 위해 '기계톱'을 들이대겠다면서 광범위한 공기업 민영화도 강조해왔다.
그는 다음달 10일 새 정부가 출범한 뒤 달러화를 어떻게 실현할지 청사진 마련 작업을 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추종자인 밀레이는 선거기간 오캄포가 중앙은행 총재를 맡아 중앙은행 폐쇄 작업을 진행한다고 밝혀왔다. 지난 9월에는 달러를 공식 통화로 바꾸겠다면서 중앙은행 폐쇄는 '협상불가능한' 명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캄포 측근은 23일 밤 그가 중앙은행 총재 자리를 맡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밀레이 당선인 사무실은 24일 소셜미디어 X 트윗에서 달러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거짓 소문들이 퍼지고 있다"며 중앙은행 폐쇄는 '협상 불가능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오캄포가 총재 후보에서 사퇴한 뒤 밀레이는 중도우파 마우리치오 마크리 전 대통령 시절 중앙은행 부총재를 맡았던 데미안 리델을 총재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중앙은행 총재와 함께 경제 사령탑을 구성하는 경제부 장관 후보는 아직 공석이다.
밀레이는 1990년대 JP모건에서 중남미 트레이딩 부문 책임자를 지냈던 루이스 카푸토를 22일 만난 뒤 그를 극찬하고 나서 카푸토가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
스스로를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에 견줘 '금융의 메시'라고 말하고 다니는 카푸토는 2017~2018년 역시 매크리 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러나 밀레이는 카푸토가 장관직을 맡을지 여부를 아직 결심하지 않았다는 보도 속에 그를 띄우는 일을 멈췄다.
한편 아르헨티나 금융 시장은 밀레이가 다음달 10일 대통령 취임에 앞서 핵심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점점 고역이 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페소화 표시 단기 채권 발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 유동성을 흡수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페소는 공식 환율이 달러당 364페소로 정해져 있지만 23일 암시장에서 그 3배에 육박하는 1020페소까지 폭등했다.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경제를 정상화하겠다는 밀레이의 야심이 출발부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전망이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