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중앙은행인 이스라엘은행(BOI)이 대대적인 시장 개입으로 자국 통화인 셰켈(신셰켈)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덕분에 하마스와 전쟁으로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와중에도 셰켈은 이달 들어 전세계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가치가 많이 오른 통화가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BOI가 수십억달러를 풀어 셰켈을 사들인 덕에 셰켈은 11월 들어 세계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통화가 됐다고 보도했다.
셰켈은 24일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에 대해 약 8% 가치가 급등해 3.74셰켈로 뛰어올랐다.
셰켈은 지난달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침공한 뒤 양측간 전쟁이 중동지역 전체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고전했다. 이후 20일 동안 통화가치가 6% 가까이 하락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서는 상승 반전에 성공했다.
중앙은행의 개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셰켈 가치가 급등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전쟁이 지역 전체로 확산할 가능성은 낮다고 투자자들이 판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탄탄한 재정수지와 중앙은행의 환율방어 의지가 시장에 먹혔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해외 유대인들의 자금력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전쟁을 시작한 뒤 전쟁자금 마련을 위해 해외에서 국채 발행으로 60억달러 이상을 끌어들인 것도 셰켈 가치 상승에 일조했다.
이스라엘은 일반적인 경매 방식 대신 사전에 지정한 투자자들에게 국채를 발행해 이 돈을 조달했다.
도이체방크 선임 외환전략가 올리버 하비는 이스라엘 셰켈 가치 상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긴장이 지역 전체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완화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비는 이어 셰켈은 "통상 미국 주식시장이 상승할 때 흐름이 좋았다"면서 이달 뉴욕증시가 급등세를 탄 것 역시 셰켈 가치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셰켈 상승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극단적' 공매도 포지션 후퇴도 꼽힌다. 셰켈 가치 하락에 베팅했던 헤지펀드들이 BOI의 강력한 환율방어 의지를 보고 공매도 포지션을 접으면서 셰켈이 상승세를 타는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BOI는 이달 초 외환보유액이 지난달 73억달러 감소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감소액 상당분은 환율방어에 투입됐다.
씨티은행 신흥국 국채 부문 책임자 루이스 코스타는 "BOI가 달러당 4.00셰켈이 넘지 않도록 방어하는 일을 꽤 잘해냈다"면서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서 투기적인 셰켈 공매도 자금 유입을 압박하는 역할도 훌륭히 해냈다"고 평가했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목표치를 1~3%로 책정하고 있는 BOI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5월 이후 기준금리를 4.75%에서 묶어두고 있다. 이 기간 이스라엘 인플레이션은 4.6%에서 3.8%로 떨어졌다.
전쟁이 나면 금리를 올려 외국 자금을 유치하거나 자금 이탈을 방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시장에서는 외려 BOI가 조만간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한 곳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은 지난주 올 4·4분기 이스라엘 경제가 5%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우려한 바 있다. BOI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낮췄다.
씨티은행의 코스타는 BOI가 내년 1·4분기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렇게 되면 셰켈이 '미니 하강 사이클'로 접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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