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따른 전기차 수요 부족 속에 테슬라가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바로 일본 도요타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지난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놓고 치열했던 설전이 전기차의 승리로 귀결됐지만 올해는 고가의 전기차가 하이브리드보다 경제성 면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들이 줄을 이으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이하 현지시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030년 이전에 도요타를 제치고 전기차를 통해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로 올라설 계획이지만 도요타에 발목이 잡혔다고 보도했다.
도요타, 하이브리드 확대
미국에서 테슬라는 몇 안되는 차종으로 이미 도요타 일부 베스트셀러 모델들을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판매 대수를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 등극은 갈 길이 먼데다 도요타가 하이브리 확대 전략을 짜면서 고전하고 있다. 특히 올해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계획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이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전기-내연기관 혼성인 하이브리드는 외려 올들어 급격한 수요 증가세를 경험하고 있다.
도요타가 하이브리드를 확대하고 있고,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도 하이브리드 전략에 가담했다. 하이브리드 시장이 커지면서 비싼 테슬라 전기차 시장이 타격을 받고 있다.
가성비 우위로 재도약
하이브리드가 전기차 대세론을 일축하고 올해 재기에 성공한 것은 높은 가성비 덕이다. 하이브리드는 싸다. 전기차는 물론이고 일부 모델의 경우 내연기관 버전보다 싸다. 그러면서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연비는 높다. 충전소를 찾아 헤매야 하는 전기차의 불편함도 없다.
20여년 전 프리우스를 들고 나와 하이브리드 시장을 개척한 도요타 하이브리드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지만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주춤해지면서 부활하고 있다.
도요타는 도요타와 렉서스 브랜드로 미국에서 순수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모두 26종의 전기차 관련 차종을 판매하고 있다. 도요타 전기·하이브리드 출하대수는 올들어 9월까지 약 45만5000대로 1년 전보다 20% 급증했다.
테슬라는 미국 출하 성적을 따로 공개하지 않지만 모터인텔리전스 추산에 따르면 이 기간 테슬라의 미 전기차 출하규모는 약 49만3500대로 26% 늘었다. 도요타의
지난해 "하이브리드에서 전기차로 갈아탈 시기"라며 전기차의 승리를 선언했던 머스크는 올들어 전기차 수요 부진에 맞서 대대적인 가격인하를 단행했다. 그 여파로 3·4분기 테슬라 순익은 44% 급감했다.
라브4 따라잡은 모델Y
이같은 가격 인하에 힘입어 테슬라 베스트셀러인 크로스오버 모델Y는 도요타 베스트셀러 크로스오버 라브(RAV)4를 바싹 추격하고 있다.
전기차 세제혜택과 가격인하로 모델Y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덕이다.
모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모델Y 판매량은 라브4에 약 7000대 뒤지는데 그쳤다.
머스크는 지난달 애널리스트들에게 모델Y가 라브4와 같은 가격이었다면 아무도 라브4를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테슬라는 실제로 도요타에 가장 무서운 적수이기도 하다.
스트래티직비전에 따르면 미 테슬라 신규고객의 8%는 도요타 자동차를 타던 이들이다.
하이브리드 박차 가하는 도요타
도요타는 그러나 테슬라의 순수 전기차 전략에 맞서 하이브리드 전략 강화로 테슬라를 견제하고 있다.
이달에는 미 세단 베스트셀러인 캠리 하이브리드 버전을 공개했다. 도요타는 캠리의 경우 순수 전기차는 내놓지 않고 하이브리드 버전만 출시할 계획이다.
도요타가 하이브리드 전략을 강화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충분한 가격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최초의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를 내놓을 때만 해도 가격은 비쌌다. 2005년 도요타가 내놓은 스포츠유틸리티(SUV)차량 하이랜더의 경우도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 하이랜더에 비해 1만달러 가까이 비쌌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도요타는 새 캠리 하이브리드 버전이 얼마나 할 지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기본 세단의 경우 하이브리드 버전이 일반 내연기관 버전보다 2500달러 싸다.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재무장한 도요타 하이브리드와도 경쟁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지속할 전망이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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