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 작가 "응답하라 시리즈 등 드라마, 영화소재로 제공하고 싶어"
[파이낸셜뉴스] '응답하라 1982'
1980년대 부산 남포동 극장가와 구둣방 골목 DJ가 있는 음악다방 풍경, 부산 신창동 유나백화점 뒷편 '꾸리에' 클래식 다방, 신군부 전두환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던 대학생과 전투경찰 대치, 코를 찌르던 시위 진압용 최루탄과 지랄탄 가스 냄새, 대청동 미문화원 방화사건까지..
대학가 낭만의 끝자락과 대한민국 민주주의 '격동의 시대'로 타임머신을 돌린 듯한 1980년대 당시 20대 꽃다운 젊은 여대생 생각이 가감없이 적힌 일기가 여러 권의 책자로 출판돼 화제다.
자식 밖에 모르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열심히 일한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 같은 가정사와 첫사랑의 아련한 실루엣, 추억을 나눠 가진 친구들의 소중함까지 담긴 40년 전의 일기를 책자로 펴낸 주인공은 동아대학교 국문과 82학번 김은형 작가다.
벌써 60대를 맞은 김 작가는 꼼꼼하게 기록한 일기를 지난 2018년부터 매년 한권씩 책으로 출판하고 있다. 1980년대 청춘을 뜨겁게 살았던 한 여자의 일기(뜨거운 꽃의 일기)라는 뜻의 '열화일기(熱花日記)'는 현재까지 여섯권이 나왔다. 김 작가는 오는 2027년까지 모두 열권을 펴낼 예정이다.
대학을 입학한 해인 1982년 8월 20일 여름방학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김 작가는 그때 당시 젊은이들의 생각과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
열화일기 1권에 담긴 1982년 12월 27일(월) 일기에는 당시 등장했던 '버스안내양'을 위한 대학써클 위문공연을 준비한 내용도 적혀 있다. 1982년 10월 13일자(수)에는 그때 한창 유행한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던 음악다방인 남포동 '밀물다방'에서 'DJ오빠님이 오늘 이 노래를 안틀어주면 '밀물'이 '썰물' 되도록 울 거고 틀어줄 때까지 집에도 안들어갈꺼예요'라고 적은 쪽지를 그대로 읽는 바람에 그때 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웃었던 에피소드도 담고 있다.
1982년 10월 19일(화) 일기에서는 일기를 쓰는 이유에 대해 '무엇보다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한 40, 50세쯤 돼서 읽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젊은 날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노트를 읽게 되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진다'고도 적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여섯권의 열화일기에는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야기나 영화, 라디오 좋은 말까지 느낀 점이 모두 담겨 있을 정도다.
김 작가는 글쓰기와 아날로그를 좋아하지만 디지털 문화와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시대에 순응해 세상의 아름다운 장면과 자연, 특이한 간판을 단 가게 이름까지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것으로 일기를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김 작가는 "두 대의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내용을 검색하면서 모은 사진이 10만장이 넘는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때에는 공장 가동도 평소 같이 않아 하늘이 유난히도 맑고 선명해 그 장면만 집중적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시절과 이후 직장생활을 했던 20대 후반까지 적은 일기를 보따리에 싸서 결혼 이후 친정에 보관하다 1997년 IMF시절 운영하던 주물공장에 일감이 떨어져 경남 창원에 있는 친정에 남편이 잠시 머무르면서 이를 몰래 훔쳐 읽게 된 것이 출판의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남편이 느닷없이 일기에 담긴 첫사랑 남자친구 이름을 부르면서 '그 사람이 보고 싶지 않나'라고 해 깜짝 놀랐다"면서 "그러면서 일기가 아니고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감각적인 글의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글을 부지런히 적어 모아 놓으면 책을 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일기가 세상에 출판돼 선보이게 된 사연을 들여줬다.
결혼조건으로 1년에 '국내 여행' 한번, '해외 여행' 한번 이상을 보내주기로 약속 받았다는 김 작가는 지금까지 40개국이 넘는 나라를 둘러봤다며 '외조의 왕' 남편을 고마워했다.
글쓰기와 여행, 요리하기를 좋아한다는 김 작가를 남편은 '김 열정'으로 부를 정도라는 것이다.
앞으로 남다른 호기심으로 '신비로운 일상'과 '축제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김 작가는 "담당 프로듀서나 제작진에서 요청해 올 경우 '응답하라 1988'과 같은 인기 드라마 소재나 에피소드로 일기 내용을 제공하고 싶다"는 뜻도 피력했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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