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블록체인이 국내 기부 문화를 바꾸고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도 가상자산을 활용해 기부 캠페인을 진행한다. 업계는 "블록체인이 가진 '투명성'과 '효율성'이 기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상자산 기부' 바람 분다
27일 미국의 블록체인 기반 모금 플랫폼 기빙블록(The Giving Block)의 2023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 기부액은 1억2500만달러(약 1630억원)를 넘었다. 가상자산 시장이 격동의 시기를 보냈음에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기부액이 모였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타난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21년 국내 법정기부금 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가상자산을 기부받았다. 이후 기부 참여자에게 기부증서 대체불가능토큰(NFT)을 주는 '그린 열매 NFT 나눔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젊은층의 관심을 끌었다.
월드비전은 지난해 9월 국내 비정부기구(NGO) 최초로 이더리움으로 후원금을 모금하는 페이지를 오픈했다. 사내벤처로 키운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VAKE)’도 소개했다. 스스로 캠페인을 만들고 참여하는 능동적인 기부자를 양성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블록체인기업 중에는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해 3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함께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에 가상자산을 기부하는 캠페인을 펼친 바 있다.
업비트 이용자가 기부용 전자지갑 주소로 비트코인(BTC)을 기부하면 해당 금액 만큼 일정 한도 내에서 두나무가 추가로 기부금을 더하는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 방식을 활용했다. 모인 가상자산은 총 14비트코인, 기부 당시(3월 14일) 기준 약 4억4000만원이 모였다. 캠페인에 참여한 이용자들은 기부를 증명하는 NFT를 받았다.
두나무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과 ‘멸종 위기 식물보호 프로젝트’를 통해 NFT 판매대금과 수수료 전액을 멸종 위기 식물 복원에 사용하기도 했다.
두나무는 특히 메타버스 플랫폼 세컨블록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공유하는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소통을 강화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투자자는 “업비트를 통해 캠페인 소식과 기부금 활용방안을 확인할 수 있었고, 취지에 공감해 캠페인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활성화 위해 제도 개선돼야"
업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블록체인이 모금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부자들에게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강점이 있다고 했다. 블록체인에 저장된 정보는 변경할 수 없고, 열람이 가능한 장부에 사용내역이 기록돼 기부금의 모든 이동경로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블록체인 행사 ‘업비트 D 컨퍼런스(UDC) 2023’에서도 국내 비영리기관 관계자들이 참석, 가상자산 기부 트렌드와 활용성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국경 간 자금 이체 속도 증진과 수수료 절감이 디지털 자산 기부의 장점으로 언급됐다. 전자지갑으로 직접 전송되는 블록체인 이전 방식은 기존 해외 송금보다 빠르고, 비싼 수수료에 대한 부담도 사라진다. 특히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한 전시 상황이나 자연재해시 지원을 신속하게 제공, 구호활동을 촉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호윤 월드비전 팀장은 "모금 시장에서 발생하는 환차손만 수십억원에 이른다. 이것만 줄여도 나라 하나를 살릴 수 있을 정도”라며 가상자산 기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가상자산 기부가 비영리 단체의 수익원을 다각화해 기존 모금 수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디지털 자산이 또 다른 기부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한 개선 사항에 대해서도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이주희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리는 "가상자산 기부 캠페인 진행시 콘텐츠 기획보다 지갑 개설 등 실제 기부 참여방법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다”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디지털 자산 분야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표현이 각기 달라 진행기관 사이에서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제도 공백 등에 따른 어려움도 있었다. 법인이 기부받은 코인을 장내에서 현금화하기 어렵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명확한 정책이 부재한 탓에 법인의 가상자산 수취와 관련해 회계법인 등에서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디지털 자산 기부 문화의 확대를 위해 기부받은 자산을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길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과 명확한 회계 기준이 제시되는 등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자산 기부가 나눔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며 "다만 기부 영역 확장을 위해선 더 많은 사례와 지침 등을 함께 공유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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