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중국 고위직들이 가장 좋아했던 대사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사전을 씹어먹을 정도로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익힌 덕에 실력이 급속하게 향상됐고, 만날 때마다 변화된 모습에 중국 관리들이 반하지 않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그를 지켜본 이들의 평가다. 중국어 공부 자체를 중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한다.
여기에다 당시 중국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관심이 많았다. 중국과 교류를 쌓기 위해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배우는 경제전문가 출신 대사의 인기는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이 인사가 만나지 못했던 중국 관리는 없었다. 국가주석을 포함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외교부장, 상무부장, 각 성시 지도자 등이 앞다퉈 그를 호출했다.
그렇다고 기업이나 교민들에게 소홀하지도 않았다. 수시로 기업인들을 만나 고충을 듣고, 교민들과 유대도 다져 나갔다. 우리 기업과 교민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면서 중국 측에 한국을 대표해 국익을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민사회 활성화 차원에서 행사장에도 꾸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교민 커뮤니티를 하나의 작은 한국으로 인식했다.
베이징에서 수십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한 교민은 "역대 대사들 중 현재까지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분"이라며 "'대사'가 누구이며,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사실 외교는 생물과 같다. 시대, 시기, 상대국 그리고 글로벌 정세에 따라 시시각각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한 지점에서, 하나의 시점으로 공과를 판단하기 힘들다. 오늘의 외교참사가 후일 업적으로 재평가되기도 한다. 외교에는 정답이 없다.
반면 기업인과 교민이 매기는 성적표에는 정답이 명확하다. 세월이 흐른다고 대사를 바라보는 잣대가 바뀌지는 않아서다. 외교는 물론 기업·교민에 대한 관심과 공감능력, 소통·대화 의지, 실천력 등을 모두 시험지 위에 올려놓고 채점한다. 까다롭다. 어떻게 보면 주재국 카운터파트를 상대하는 외교보다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외교든, 기업이든, 교민이든 대사 자리에 있는 동안 모두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대사는 한 국가를 대표해 다른 국가에 주재하면서 외교교섭을 하며, 자국민을 보호하는 외교사절이다. 대사를 가리켜 국가원수와 그 권위를 대표한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대사는 선민의식을 갖고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옛 대사를 그리워하는 교민들의 목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온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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