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출범 당시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으며 '이슈몰이'에 성공했던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이변 없이 '혁신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공식을 재확인한 셈이다.
1일 여권에 따르면 혁신위의 '중진·지도부·친윤의 험지 출마 및 불출마' 안건을 지도부가 4일까지 수용하지 않을 경우 조기 해체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권 주겠다"..근데 어디까지?
당차게 시작했던 혁신위가 흔들린 건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공천 문제를 건드리면서였다. '중진·지도부·친윤의 험지 출마 및 불출마' 요구를 공식 안건이 아닌 권고 수준으로 2호안과 함께 제안했지만 이는 지도부는 물론 당내 여론도 부정적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전권에 대한 인식 차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비대위 전환을 일축하며 혁신위에 전권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 전권이 공천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준다는 의미는 아니었음이 확인됐다. 특히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를 달라는 인 위원장의 요구를 김 대표가 단칼에 거절하면서 이러한 인식 차가 뚜렷이 드러났다.
■공천시계 엇박자
혁신안을 들여다보면 1호(당내 대사면)을 제외한 2~6호는 모두 공천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2호부터 하위 평가 20% 공천 배제 요구가 나왔으며 청년 비례대표 50% 할당(3호), 지역구 전략공천 배제(4호), 과학계 비례 공천(5호)에 이어 가장 수위가 높은 불출마·험지 출마 요구(6호)까지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이중 2호, 5호를 제외한 나머지 예민한 문제에 대해 지도부는 '공관위가 결정할 일'이라며 사실상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천 문제를 건드린 건 혁신위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총선 승리를 위한 혁신'이라는 역할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이 바뀌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에는 인적 쇄신만한 게 없다는 인식을 같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혁신위 요구는 너무 빨랐고, 지도부 반응은 너무 느렸다. 혁신위는 빠른 성과를 원했으나 지도부는 공관위도 구성되지 않은 시점에 공천 갈등을 자처해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도부와의 엇박자 속에서 의원들도 등을 돌리면서 혁신위는 동력을 잃었다. 물밑 불만에 이어 "자진 해산하는 것이 옳다(이용호 의원)", "의원들의 정치적 생명을 쥐고 이래라 저래라하는 '옥상옥'이 아니다'"라는 공개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혁신위와 지도부의 힘겨루기도 문제지만 이처럼 현역 의원들의 지지가 없는 상황에서 혁신위가 지속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예민하지 않은 문제만 건드리는 '쉬운 혁신'을 하자니 혁신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고, 공천 혁신을 하자니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혁신위와 지도부의 '환상호흡' 대신 '책임전가'
적지 않은 기대를 받았던 인요한 혁신위마저 실패 수순을 밟으면서 혁신위에 대한 회의론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혁신위를 돌아보면 혁신위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지도부의 전폭적인 혁신안 수용이 발을 맞췄을 때만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지도부의 홍준표 혁신위, 2016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김상곤 혁신위가 그러했다.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혁신위는 혁신위원장의 구설수 논란이나 지도부의 무응답으로 조기 해체됐다.
현재까지도 여권에선 당시 박근혜 대표가 '공직선거 후보 공천 시 일반 국민 의사 50% 반영' 요구를 수용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전폭 수용하면서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는 평가다. 2016년 당시 문 대표도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교체', '총선 경선 선거인단 100% 일반시민 구성' 등을 수용했고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혁신위는 민심을 최대한 반영하는 혁신안을 내놓고, 지도부도 그 명분에 동의하면서 희생을 감내하는 것. 이것이 혁신위 성공 조건이지만 인요한 혁신위원회는 '김기현 체제를 위한 시간 끌기용'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지도부는 기득권 내려놓기를 거부했다. 여기에 더해 서로를 탓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혁신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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