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배우라는 말 처음 들어봐요."
지난 11월27일 처음 방송된 ENA 월화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극본 김민정 / 연출 김윤진)는 주인공 차진우(정우성 분)와 정모은(신현빈 분)이 뜻하지 않게 서로를 통해 따뜻한 인간적 위로를 느끼면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클래식 멜로를 표방하는 이 드라마는 손으로 말하는 화가 차진우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의 소리 없는 사랑을 그리는 드라마다.
1화는 두 사람이 제주도에서 우연히 계속 마주치다 카페 화재 현장에서 정모은이 차진우를 도와주게 된 것을 계기로 인연을 시작하는 모습을 담았다. 차진우는 정모은에게 수어로 '배우'냐고 물었고, 그간 수많은 오디션과 촬영 현장에서 보조출연·엑스트라·단역으로만 불렸던 정모은은 '배우'라는 단어를 듣고 힘과 용기를 얻었다. 또 차진우는 '배우님에게'라는 글이 적힌 정모은의 초상화를 선물해 뭉클함을 더했다.
이후 차진우는 서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정모은이 자신에게 수어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낯선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세상에 노력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히 내 몫이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를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라는 차진우의 내레이션은 정모은을 향한 감정 변화를 암시했다.
2화에서 두 사람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차진우는 정모은에게 공연 티켓을 선물했고, 정모은은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나랑 가면 재미 없을 것"이라고 거절했음에도 정모은은 함께 가길 원했다. 약속 당일 차진우는 이웃 꼬마 민준(김라온 분)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게 된 해프닝으로 인해 납치범으로 체포됐고, 정모은과의 약속에 늦었다. 미안해 하는 차진우에게 정모은은 자신의 노래를 들려줬다. 차진우가 소리의 기억, 진동, 울림으로 음악을 느낀다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자신의 목에 그의 손을 갖다 댔고, 차진우의 눈빛은 흔들렸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서로를 통해 마음이 움직이고 변화되는 두 주인공처럼, 시청자들 역시도 서서히 이들로 인해 위로를 느끼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하는 작품이다. 청각 장애인 차진우는 세상으로부터 편견과 불편한 시선을 받고, 정모은은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을 뒤로 하고 배우라는 도전에 나섰지만 오디션 현장에서 겪는 무례한 언어들로 좌절하고 싶은 순간들을 맞이한다. 그런 차진우와 정모은이 자신의 장애와 꿈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를 받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차진우와 정모은의 멜로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정우성과 신현빈이 만들어낸 멜로 케미가 돋보인 덕분이다. 정우성은 이 드라마와 인연이 13년 전부터 있었다며, 이 작품을 오랜 시간 기다려 11년 만의 안방 복귀작으로 선택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꾸준히 다작을 해온 필모그래피에서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청각 장애인 캐릭터와 수어 연기만으로도 배우에게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정모은이 극 초반 차진우의 소리 없는 세계를 낯설어하듯,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세계였지만 정우성의 깊은 눈빛 연기가 금세 몰입도를 불러일으킨다.
신현빈은 배우 지망생 정모은을 현실적인 캐릭터로 풀어갔다. 장르물처럼 임팩트가 큰 캐릭터 설정이 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배역은 연기가 더 쉽지 않음에도 이에 체화된 모습으로 극에 녹아들었다. 정모은 그 자체가 된 듯 밝고 선한 매력으로 세상으로부터 애써 고립되려 한 차진우를 이끈 것처럼, 시청자들 역시 정모은을 통해 '사랑한다고 말해줘'와 이들 커플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며 배우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까지도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어떤 서사를 쌓아갈지도 궁금증과 기대감을 더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연출도 돋보인다. '그해 우리는'으로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김윤진 감독의 연출력이 또 한번 돋보인다. 김윤진 감독은 차진우와 정모은의 다른 세계를 오가는 사운드로, 청각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소리 없는 세계를 반복적으로 실감하게 한다. 정모은이 귀를 막고 비 내리는 풍경을 차진우와 함께 지켜보며 "소리 없이 내리는 비도 나쁘지 않다" 말하는 장면은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인상적인 장면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윤진 감독은 청각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연출을 풀어가는 과정에 대해 "두렵고 걱정도 됐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소리 없는 세계를 다뤄보고 싶은 직업적인 욕심도 있었다"고 했다. 종국에는 '사랑한다고 말해줘'가 어떤 여운을 더 남겨줄지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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