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사우디의 기세는 초강세다. 정치, 경제, 스포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세가 되고 있다.
정치적 영향력은 아랍권을 벗어났다. 수니파 맹주에 만족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 또는 중재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위상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국과 중국도 사우디에 다가서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재선을 위해 구애의 손을 내밀고 있는 실정이다. 스포츠에서도 사우디 위상이 급격히 높아졌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 네이마르 등 쟁쟁한 선수를 영입하며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골프에서는 골프투어인 LIV를 설립, 콧대 높은 PGA와의 합병을 성사시켰다. 또 2034월드컵 개최를 확정했고 2036올림픽에 대한 욕심도 내비치고 있다.
사우디의 행보를 놓고 '돈질'의 결과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가 많다. 어느 정도 맞지만 전적으로 돈의 힘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사우디는 지난 2016년 '비전2030'을 발표했다. 보수적인 이슬람 왕국을 개혁하고 석유의존 경제를 다각화하는 내용이다. 발표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비전2030 중 핵심, 상상의 도시인 '네옴시티'가 진행되면서 관심이 높아졌고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15년 전에 왕국을 바꾸려는 청사진을 내놓고 차근차근 진행한 결과다. 2030엑스포도 비전2030 피날레를 위한 이벤트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우디와 경쟁한 우리의 강점은 무엇일까. '빨리빨리' 문화로 얻어진 순발력, 결정되면 정부는 물론 기업·국민이 한마음으로 진행하는 추진력, 다양한 국제대회 개최로 얻어진 경험 등 많다.
다만 약점도 명확하다. 중장기 비전이 부족하다. 멀리 보고 계획을 세워서 진행하기보다는 순간적으로 결정을 하고 추진하는 방식이 많다. 물론 성과를 얻으면서 약점이 강점이 되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위기상황인 지금은 중장기 비전이 필요하다. 국가경쟁력인 반도체와 2차전지 산업은 후발주자로부터 맹추격을 받고 있다.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인구는 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감하고 있다. 우리가 왕정국가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만큼 정권이 바뀌면 의사결정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백년지대계는 아니더라도 10년, 20년을 유지할 수 있는 비전은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10년 이상을 보고 준비하는 비전은 어떤 게 있을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2030엑스포는 우리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먼저 준비한 사우디의 승리라고 봐야 한다. '오일머니 때문'이라고 평가절하하기 전에 사우디의 비전과 전략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김기석 국제부장·경제부문장 kks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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