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보조배터리와 손난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05 18:43

수정 2023.12.07 15:13

권준호 산업부 기자
권준호 산업부 기자
최근 지인에게서 손난로 기능이 있는 보조배터리를 선물받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최고 온도 60도까지 올라가는 제품이다. 실제로 사용해 보니 정말 따뜻했다. 그 덕분에 어릴 적 많이 사용했던 '똑딱이 손난로' 추억도 떠올랐다. 사실 보조배터리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손난로로 사용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배터리 과열=발열 사고'에만 집중한 탓에 손난로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누군가는 단점만 볼 때 발상을 전환해 편리한 도구로 만드는 건 고마운 일이다. 이처럼 생각의 전환은 우리가 평소 볼 수 없었던 부분을 밝혀준다. '발열'이라는 특성을 겨울철 손난로에 대입한 것처럼, 뒤집어 보면 생각지 못한 부분을 발견한다.

지난주 발표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 해외우려기업(FEOC) 세부 규정안도 마찬가지다. 대다수가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위기론'을 말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해외우려기업과 협력할 길이 열렸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세부 규정안에 추가된 핵심 내용은 합작사 가운데 해외우려국가 자본 지분율이 25% 이상인 곳은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IRA에 따라 미국 내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 구매자에게 최대 7500달러, 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미국이 지정한 해외우려국가는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다.

LG화학, SK온, 포스코퓨처엠 등 이미 중국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한 곳이나 준비를 대부분 마친 기업들에는 좋지 못한 소식이다.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당장 수천억원으로 예상되는 중국 지분 매입이 사실상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수확은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점이다. "가이드가 명확하게 나왔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거나 "대책 마련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업계 반응이 많다.

일각에서는 이 기회에 '탈(脫)중국'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이 25%라는 비율을 제시한 만큼 이를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 한국은 아직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광물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배터리 소재 국산화도 결코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보조금 규제와 중국의 배터리 소재 공급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피할 수 없는 게 한국의 운명이다.
좋든 싫든 이제는 '손난로 보조배터리' 식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권준호 산업부 기자 kjh0109@fnnews.com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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