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에 이제마라는 의원이 있었다. 이제마는 사람의 체질을 소음인, 소양인, 태음인, 태양인으로 구분해서 치료를 달리했다. 이제마의 치료법은 일반 의원들의 치료법과 사뭇 달라서 소위 사상의학으로 불렸다.
어느 해 봄 청명(淸明) 시기, 이제마는 소양인 상한(傷寒)에 열이 나면서 발광(發狂)하며 헛소리하는 사내를 치료한 적이 있었다. 상한(傷寒)은 감기나 발열성, 전염성 질환으로 인한 열병을 칭하는 병증이다.
소양인은 음허(陰虛)하면서 열이 많아 쉽게 화열병(火熱病)에 걸린다. 성격이 급하고 화가 많으며 욱하는 성질이 있다. 상체가 발달해서 어깨가 발달하고 골반이 좁다. 장부기능은 비대신소(脾大腎少) 해서 소화기 기능은 발달해 있으면서 비뇨생식기 기능은 약한 편이다. 평상시 병이 없을 때에도 열이 많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사내가 상한에 걸린 지 4~5일이 지난 어느 날 정오경이었다. 그런데 사내는 갑자기 숨이 차고 호흡이 가빠졌다. 이제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 1첩을 처방했다. 육미지황탕은 신수(腎水)를 보하는 처방으로 신음(腎陰)이 부족한 소양인에게 아주 흔하게 쓰이는 처방이다. 사실 당시만 해도 이제마는 소양인에게 육미지황탕이 최고로 알고 다른 약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육미지황탕을 복용한 사내는 숨찬 것이 바로 진정되었다.
그러나 며칠 후에 다시 발광을 하면서 헛소리를 하고 숨찬 증상이 도졌다. 이제마는 다시 육미지황탕 1첩을 썼다. 그러나 숨찬 것은 약간 진정되는 것 같았지만 지난번처럼 효과적이지 않았다. 사내는 3일 내내 계속해서 발광을 했고 숨찬 증상은 심해졌다. 이제마는 또다시 육미지황탕을 처방했지만 이제는 숨찬 증상은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심지어 열이 오르고 혀가 말리며 풍(風)이 동해서 이를 악물고 말을 못하게 되는 증상까지 생겼다. 파상풍에 의한 아관긴급(牙關緊急)과 같은 증상이었다.
이제마는 급하게 백호탕(白虎湯) 1첩을 처방했다. 백호탕은 성질이 아주 차가운 석고(石膏)를 군약(君藥)으로 한 고열을 동반한 급성 전염성질환이나 염증이 심각한 중증상태에 사용하는 처방이다. 그러나 사내는 입을 벌릴 수가 없어 입으로 탕약을 마시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대나무 관을 이용해서 사내의 코 안에 넣고 약을 관 속으로 집어넣었다. 다행히 꿀꺽~ 꿀꺽~ 사레에 걸리지 않고 잘 삼켰다.
이제마는 연속해서 백호탕 3첩을 달여서 대나무 대롱을 통해 흘려 내려 보냈다. 사내는 고통스러운지 몸부림쳤다. 겨우 3첩을 모두 먹이고 나자 사내의 뱃속에서는 천둥소리가 났고 아주 큰 소리로 방귀를 뀌었다. 이제마는 백호탕을 더 달여서 먹이도록 했다.
이렇게 그날 오후 1시경부터 한 밤중까지 콧속으로 들어간 석고의 양만 해도 8냥이나 되었다. 8냥이면 거의 300그램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그날 밤 사내의 배는 팽창되어 대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며칠째 대변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사내는 갑자기 각궁반장(角弓反張)의 증세로 몸을 활처럼 뒤집더니 이후에 잠시 있다가 땀이 나고 잠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다음 날 아침이 밝자 엄청난 양의 대변을 봤다. 그랬더니 열이 떨어지고 구금(口噤)증상도 모두 회복이 되었다.
이제마는 ‘소양인 열병에는 변통(便通)이 중요하구나’하고 생각했다. 변통(便通)이 되면서 하기(下氣)가 된 것이다.
어느 날은 다른 소양인 사내가 상한병에 걸린 이후 꿩고기탕을 먹고 나서 온 몸의 피부에 양독발반(陽毒發斑)이 피어올랐다. 양독발반은 일종의 열꽃이다. 이제마는 이 증상을 열독(熱毒)에 의한 것으로 보고 이 사내에게도 백호탕 3첩을 연속해서 복용토록 했다. 그러나 그 사내는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반 첩만 복용하고서 복용을 멈췄다. 며칠 후 그 사내는 헛소리를 하면서 병이 심해졌다.
사내의 집에서는 급히 이제마에게 찾아와 살려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저녁 무렵 이제마가 급히 환자의 집에 가 보니 사내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고 귀가 잘 들이지 않았으며 풍(風)이 동할 조짐이 보였다. 혀에는 백태가 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사내도 대변을 며칠째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마는 어떻게든지 급하게 변통(便通)시키고자 했다.
당시 이제마의 약주머니에는 석고 1근과 활석 1냥이 들어 있었다. 이제마는 급하게 가지고 있는 석고 1근과 활석 1냥을 모두 한꺼번에 달여서 먹이게 했다. 그래도 대변이 안 나오자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약방에서 석고 1냥과 활석 1돈을 가져와서 달여 먹였다. 다행스럽게도 곧바로 대변이 쏟아져 나왔다. 피부에 난 열꽃도 바로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환자의 가족들이 석고를 너무 많은 양을 먹이는 것이 아니냐고 불안해 해서 처방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사내의 대변이 다시 막혔다. 이제마는 가족들을 안심시키고서는 다시 석고 1냥을 연이어서 달여 먹였다. 이렇게 5~6일 동안 처방된 석고는 무려 14냥이나 되었다.
사내는 일시적으로 발광(發狂)을 한 차례 했지만 날마다 변통(便通)이 되면서 말소리가 웅장해졌고 병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결국 사내는 건강을 회복해서 대문 밖을 나다니게 되었다. 이제마는 많은 임상경험을 하면서 소양인 열병에는 대변을 통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열병(火熱病)에 걸린 광증 환자들에게 엄청난 양의 석고를 처방해서 치료했다는 소문에 일반 의원들이 이제마를 찾았다. 일반 의원들도 석고가 들어간 백호탕을 간혹 처방하기도 했지만, 하루 2~3첩도 조심스러웠다. 사실 일반 의원들은 사상체질을 잘 몰라서 그냥 ‘열병에 걸린 광증환자를 석고로 치료했구나’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한 의원이 “백호탕을 그렇게 많은 양을 쓰면 복통이 있고 심하게 설사를 할까 봐 두렵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이제마는 “소양인이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소양인의 속병에 변비(便祕)가 생겼다면 이미 중병입니다. 이때 용렬한 의원이 온열(溫熱)한 약이나 조열(燥熱)한 약을 쓰면 사람을 죽일 것이고, 백호탕과 같은 적방이라도 겁이 많아서 과감하게 처방하지 못해도 변통이 안되면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니 과감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제마는 소양인이라면 평상시라도 변비를 없도록 해야 하고, 특히 어떤 병증이나 질환이라 할지라도 소양인에게 변비가 있다면 가장 먼저 변비를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명을 듣던 한 의원은 “체질에 대한 대강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이제마는 “동의보감 첫 장에 ‘살찐 사람은 습(濕)이 많고, 여윈 사람은 화가 많으며, 흰 사람은 폐기가 허하고, 검은 사람은 신기(腎氣)가 족하다. 사람마다 형색이 다르고 장부도 또한 다르니, 비록 외증(外症)이 같을지라도 치법은 판이하게 다르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체질로 발전시켜 치료할 뿐입니다.”라고 했다.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마는 이어서 “소음인은 특히 비위가 약하고 허냉증(虛冷症)이 많고, 소양인은 비뇨생식기가 약하고 화열증(火熱症)이 많고, 태음인은 심폐기능이 약하고 습증(濕熱症)이 많고, 태양인은 간기능이 약하고 기역증(氣逆症)이 많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사용되는 약재들도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또 다른 의원이 “그렇다면 체질별 치료에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이제마는 “이미 설명드렸다시피 소양인은 대변을 편하게 보고 화를 억제해야 하고, 소음인은 소화가 잘 되고 몸이 따뜻해야 하고, 태음인은 땀이 잘 나고 비만해지지 않아야 하고, 태양인은 소변을 시원스럽게 보고 하체가 튼튼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로써 사상체질에 관심을 갖는 의원들이 많이 생겨났다. 의원들은 이로써 처방을 복용하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경우는 변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체질을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소양인이나 태음인이 인삼이나 홍삼을 복용하면 두통이나 안구충혈이 생기기도 하고, 소음인이 숙지황이나 구기자를 먹으면 설사를 한다. 또한 태음인의 습열(濕熱)을 제거하는 율무를 소음인이 먹으면 수분이 빠지면서 기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인삼이나 황기, 부자와 같은 온열한 약은 소음인이 아니면 함부로 처방하지 않았다. 그리고 숙지황이나 석고, 산수유는 소양인에게만 처방했다.
아무리 순한 약이라도 체질과 병증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되고, 아무리 독한 약이라도 체질과 병증에 맞으면 생명을 살리는 약이 된다. 만약 자신의 체질을 안다면 평상시 음식도 약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제목의 〇〇은 ‘변비(便祕)’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동의수세보원> 嘗治, 少陽人, 傷寒發狂譫語證, 時, 則乙亥年, 淸明節候也. 少陽人, 一人, 得傷寒, 寒多熱少之病, 四五日後, 午未辰刻, 喘促短氣, 伊時, 經驗未熟, 但知少陽人應用藥, 六味湯, 最好之理, 故不敢用他藥, 而紙用六味湯一貼, 病人喘促, 卽時頓定, 又數日後, 病人, 發狂譫語, 喘促, 又發, 又用六味湯一貼, 則喘促, 雖少定, 而不如前日之頓定矣. 病人, 發狂連三日, 午後喘促, 又發, 又用六味湯, 喘促, 略不少定, 有頃, 舌卷動風, 口噤不語, 於是, 而始知六味湯之無能爲也. 急煎白虎湯, 一貼, 以竹管, 吹入病人鼻中下咽, 而察其動靜, 則舌卷口噤之證, 不觧, 而病人腹中, 微鳴. 仍以兩爐煎藥, 荏苒灌鼻, 數三貼後, 病人腹中, 大鳴, 放氣出焉. 三人扶持病人, 竹管吹鼻灌藥, 而病人氣力, 益屈强, 三人扶持之力, 幾不能支當矣. 又荏苒灌鼻, 自未申時, 至亥子時, 凡用石膏八兩. 末境, 病人腹中, 大脹, 角弓反張之證, 出焉, 角弓反張後, 少頃, 得汗, 而睡, 翌日平明, 病人, 又服白虎湯, 一貼, 日出後, 滑便一次, 而病快愈. 愈後, 有眼病, 用石膏ㆍ黃栢末各一錢, 日再服, 七八日後, 眼病, 亦愈. 伊時, 未知大便驗法, 故不察大便之秘閉幾日, 然, 想必此病人, 先自表寒病, 得病後, 有大便秘閉, 而發此證矣. (일찍이 소양인 상한에 발광을 하고 헛소리하는 것은 치료한 적이 있는데 때는 을해년 청명 시기였다. 소양인 한 사람이 상한에 한이 많고 열이 적은 병에 걸려 4~5일 후 오미시에 숨이 차고 호흡이 급한데 이 때에 경험이 부족하여 단지 소양인의 약을 씀에 육미탕이 최고로 좋은 줄만 알아서 감히 다른 약은 쓸 생각을 못하여 다만 육미탕 1첩을 썼더니 병인이 숨이 찬 것이 즉시 진정되었다. 또 수일 후에 병인이 발광하고 헛소리하며 숨이 찬 것이 다시 발생하여 또 육미탕 1첩을 썼는데 숨이 찬 것이 비록 조금 안정되었으나 전일과 같이 진정되지는 않았다. 병인이 3일을 이어서 발광하더니 오후에 숨이 찬 것이 다시 발생하여 다시 육미탕을 쓰니 숨이 찬 것이 조금도 안정되지 못하고 잠시 있다가 혀가 말리고 풍이 동하며 이를 악물고 말을 못하게 되니 여기에 비로소 육미탕으로 될 수 없는 것을 알고 급히 백호탕 1첩을 달여 대나무 관으로 병인의 코에 불어넣어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하고 그 동정을 살피니 혀가 말리고 이를 악문 증상은 풀리지 않고 환자의 뱃속에서 약간 소리가 났다. 그래서 2개의 화로로 약을 달여 계속해서 코에 3첩을 부어넣었더니 환자의 뱃속에서 큰 소리가 나고 방귀가 나왔다. 세 사람이 도와서 환자를 붙들고 대나무 관으로 코에 약을 불어넣으니 환자의 기력이 더욱 강하여 세 사람이 도와서 붙드는 힘으로는 거의 당하지 못하였다. 다시 콧속으로 약을 부어 미신시로부터 해자시에 이르기까지 석고를 8냥을 썼는데 마지막에 환자의 뱃속이 대단히 부르고 각궁반장의 증세가 나더니 각궁반장한 후에 잠시 있다가 땀이 나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동이 틀 때 환자에게 또 백호탕 1첩을 먹고 해가 돋은 후에 활변을 한 번 보고서 병이 나았다. 병이 나은 후에 눈병이 나서 석고와 황백 가루 각각 1돈을 하루에 2번씩 먹이니 7,8일 후에 눈병이 역시 나았다. 그때는 아직 대변으로 징험하는 법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대변을 며칠이나 보지 못하였는지를 살피지 못하였으나, 생각컨대 그 환자는 먼저 표한병을 얻은 후에 대변이 막혀서 이러한 증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
<동의보감> 朱丹溪曰, 凡人之形, 長不及短, 大不及小, 肥不及瘦, 人之色, 白不及黑, 嫩不及蒼, 薄不及厚, 而况肥人濕多瘦人火多, 白者肺氣虛, 黑者腎氣足, 形色旣殊, 藏府亦異, 外證雖同, 治法逈別. (무릇 사람의 형체는 긴 것이 짧은 것만 못하고, 큰 것이 작은 것만 못하고, 살찐 것이 여윈 것만 못하고, 흰편이 검은편만 못하고, 연약한 것이 창한 것만 못하고, 엷은 편이 두터운 편만 못하다. 더군다나 살찐 사람은 습이 많고, 여윈 사람은 화가 많으며, 흰 사람은 폐기가 허하고, 검은 사람은 신기가 족하다. 사람마다 형색이 다르고 장부도 또한 다르니, 비록 외증이 같을지라도 치법은 판이하게 다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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